(30)연재를 마치며…취재기자 좌담|산-학-연 협조로 효율 높일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중앙일보는 84년 신년호부터 지난8일까지 29회에 걸쳐 우리나라 첨단기술의 현주소를 조명한 「선진의 고지 I첨단기술에 도전한다」를 시리즈로 연재했다.
작년 해외특파원들이 세계 각국에 산재한 첨단기술의 현장에 뛰어들어 취재한 「기술첨단지대」에 이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수준을 점검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된 이 시리즈는 경제부·사회부·과학부의 첨단기술 담당기자 7명이 정부관서·연구소·대학·기업 등 2백여개소를 직접방문, 연인원 1천여명의 관계자를 만나 엮은 기획물이었다.
연재하는 동안 관계분야로부터 많은 자료요청을 받았고 일부분야는 정책입안의 지침이 되기도 했던 본시리즈를 7개월여동안 이끌어 온 취재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취재과정에서 도출된 한국첨단기술의 실상과 문제점·향후전망 등을 정리해봤다.【편집자주】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모두 한국의 첨단기술발전에 일역을 담당했다고 자부해도 좋겠지요. 우선 이 시리즈가 첨단기술분야를 얼마만큼 커버했느냐부터 얘기할까요.
-그것이 가장 큰 난점중의 하나였어요. 기술 발전이 급격하고 다분화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서로 얽히니 우선 분류과정에서 난관에 부딪쳤지요.
-애초에 우리가 초점을 둔 분야는 첨단기술중에서도 산업화를 통해 선진국 진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였지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대략 짚고 넘어갈 것은 모두 다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어난립 정비 시급>
-용어선택도 어려운 것 중에 하나였어요. 쉽게 써야하는 「신문의 입장」과 어려운 전문용어로 점철되는 「첨단기술의 내용」에는 항상 괴리가 따르기 때문이죠. 때문에 어려운 전문용어를 부득이 써야할 경우엔 용어해설을 곁들였습니다.
-용어의 어려움도 문제지만 용어의 난립이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이 영어등 외래어 인데다가 통일조차 되어있지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마구 혼용되고 있습니다. 첨단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용어정비도 시급한 실정입니다.
-기본적인데서부터 완비가 되어야겠죠. 각 분야에서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어떻던가요. 우리가 정말 첨단의 고지에 설 수 있겠는지.
-제가 담당했던 반도체·퍼스컴·로보트 분야는 기술면에서 상당히 앞서가고 있더군요. 반도체만 하더라도 고작 시계용 칩이나 만들던 수준에서 작년에 VLSI인 64KD랩을 세계에서 세번째로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2백56KD램도 조만간에 개발할 예정이고 보면 선진수준이라고 볼 수 있죠. 로봇 분야도 실용화는 안됐지만 시각·촉각을 가진 로보트까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단계입니다.
-소재·조선분야에서는 선진 고지를 향한 열기는 대단하더군요. 미래의 반도체 소재인 갈륨·비소반도체소재가 이미 실험실단계에서 개발돼있고 반도체 리드 프레임용 소재는 미국에서 물질특허까지 받았습니다. 조선분야도 임금 따먹기식 대형선제조에서 탈피해 시추선등 고부가가치선박개발에 피치를 올리고 있고요.
-그렇지 못한 분야도 있어요. 중소형 컴퓨터와 신섬유의 경우 대부분 외국의 기술을 거의 그대로 들여다 조립이나 가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요. 그러나 .이미 점유된 해외시장을 뚫기는 힘들고 국내시장도 비좁고 해서 꽤 고전하더군요.
-유전공학이나 정밀화학·해양개발분야 등은 이미 상당한 저력을 확보하고 에너지의 충전을 고대하는 상태였습니다.
특히 유전공학은 기술자체의 역사가 10년 미만이고 정말로 두뇌집약적인 분야라서 우리체질에는 알맞은 기술분야죠. 연초에 유전공학육성법이 제정됐지만 좀더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해요. 그렇게만 된다면 이 분야에서의 선진고지 점령은 틀림없으리라고 봅니다.
-해양분야는 3면이 바다인 해양국가로 자처하면서도 소외돼온 분야지요. 그러나 연구는 활발히 진헹되고 있어 역시 정책적 배려만 원만히 이뤄진다면 상당한 성과를 보일 것으로 예측됩니다.

<정보산업, 정부 앞장>
-컴퓨터와 통신을 주축으로 한 정보산업분야는 정부쪽에서 오히려 적극적인 기술개발을 유도하고 있어 연구진이나 기업들이 오히려 쫓아가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역시 전체적인 국내수요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 기업으로서는 섣불리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습니까.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첨단기술에 대한 사고방식이나 분위기 같은 것은.
-한마디로 첨단기술 소리만 나오면 너도나도 달려 들겠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최근까지만해도 기업입장에서 기술개발투자는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으로 한정없고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돼왔습니다만 이젠 여건이 바뀌었잖습니까.
해당산업분야에서 첨단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낙후되거나 도태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선진국기업의 사례등을 통해서 확인했기 때문이겠죠.
-그런 연유로 기업들의 기술개발투자도 대폭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L그룹·S그룹 등 국내 대표적인 그룹기업들은 작년에 각각 3백억원을 쓴데 이어 올해는 4백억원을 기술개발투자에 쏟아 부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젠 경영자들이 자기회사의 기술개발투자액이 적으면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과장해서 발표하는 사례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산업계에서 첨단에 관한 무드는 잡혔다고 보아야지요
-그렇지만 중소기업들은 마음은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본의 선진공업화가 중소기업들이 세계 제1의 부품, 세계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낸 데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선례를 간과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분위기조성이 절실하다고 생각됐습니다.
-이제 전반적인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죠.

<쓸만한 인재가 적다>
-우리의 기술개발에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역시 인력부족이었습니다. 한결같은 고민은 「사람은 많은데 정작 쓸만한 사람이 적다」는 거죠. 전자공학과 4년을 마쳐도 반도체칩하나 설계해보지 못하고 졸업하는 실정이니까요. 교육의 질적향상과 완벽한 재교육체제의 확립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의 하나가 산-학-연의 유기적인 ,협조가 아직 미흡하다는 것입니다. 기업 (산)과 연구기관(연)의 협조는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데 대학이 소외돼 균형 있는 기술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죠.
대학은 인력양성의 역할도 하지만 저변의 기초기술을 받쳐주는 밑바탕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역시 참여되어야 합니다.
-첨단기술개발에 있어서 연구소나 기업의 진전을 정부가 못 따르고 있는 것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요소입니다. 기술개발투자만 하더라도 정부에서 내는 돈이 고작 1천억원 규모로 3∼4개 그룹기업이 쓰는 돈에도 못 미치는 실정입니다.
더우기 기술개발분야의 설정 및 장기지원대책 등 정책적 구성이 제대로 서있지 않아 엉뚱한 방향으로 가거나 중복 연구등의 비효율적 사례를 낳게 하고 있습니다.
-기술입국을 통한 선진공업화를 부르짖으면서도 항상 부족한 것이 투자입니다.
현대과학과 군사는 밀접한 상호보완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5세대 컴퓨터를 국방성 프로젝트로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국방과 첨단기술개발을 한 카테고리 안에서 운용하면 GNP의 몇%라는 국방예산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첨단의 열매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의 융통성 없는 업무분장도 문제입니다.
상공부·과기처·보사부 등 기술개발을 하자면 거쳐야 될 곳이 너무 많고 또 그 운용이 획일적이란 얘기도 나왔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앞으로 2천년대에 이루어질 선진공업한국의 청사진을 미리 그려보면서 좌담을 마칩시다.
-수고했습니다. (일동)

<◇참석자>
신종오 기자(과학부) 장재열기자(사회부) 윤재석기자 (과학부) 박태욱기자(경제부) 이덕영 기자(사회부) 방원석기자 (과학부) 김상도기자(과학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