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강요받고 안내양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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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승객에게 불친절했다는 이유로 버스회사로부터 사직을 종용받은 안내양이 사표를 내고 회사옥상 물탱크에 투신, 자살했다
동료 안내양들은 숨진 안내양이 뚜렷한 잘못이 없는데도 술취한 승객의 고발만 받고 회사측이 사표를 내도록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 안내양의 허술한 신분을 보장해줄것을 호소하고 있다.

<여덟식구 생계맡은 「착한 누나」|자살한 장양>
국졸학력의 5년경력 안내양인 장양은 부모가 지병으로 생활능력이 없고 큰언니는 시집을 갔기때문에 차녀로서 남동생 1명과 함께 식구8명의 생계를 말아왔다.
동생 장정광씨(21·전공·서울미아7동 852의1009)는 『밤잠을 못자가며 한달 19만원의 윌급중 식비등을 제한 13만원을 모두 집에 갖다주던 착한 누나였다고 울먹였다.
장양은 유서는 남기지 않았으나 싯귀를 빽빽이 적어놓은 일기장에 『손님이 우리를 벌레로 본다』『돈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고달프게 하나』『없어도 정직하게 살자』고 썼다.
21일 하오1시15분쯤 경기도 남양주군 구리읍 수택리 390의16 창진상운본사 2층옥상의 콘크리트 물탱크에 이회사 안내양 장길복양(22)이 옷을 입은채 물에 빠져 숨져있는 것을 탱크를 점검하던 경비원 최정환씨(54)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장양은 이날 회사간부들에게 불려가 『왜 손님에게 불친절하게 해서 회사에 항의신고가 오게 하느냐』는 꾸중을 듣고 회사2층에 있는 기숙사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이 회사에 계속 있고 싶은데 사표를 쓰라고 한다』며 울먹이다가 상오9시40분쯤 자취를 감췄었다.

<발단>
경기도 남양주군 교문리와 서울봉천동간을 운행하는 55번 버스안내양인 장양은 자살 하루전인 20일하오5시쯤 봉천동 부근을 운행중 술에 취한 30대 남자손님과 말다툼을 벌였다.
동료 함갑보양(18)이 장양으로부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이 남자 승객은 대뜸 『야, 봉천동종점이 어디냐』고 반말조로 물어왔다는 것.
뾰로통해진 장양이 『봉천동종점이 봉천동에 있지 어디있느냐』고 대답하자 이 승객은『손님에게 그 따위로 대하기냐. 경찰서로 가자. 구청민원실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다』며 한동안 소란을 피웠다.
이 승객은 운전사에게도 반말을 하고 소리치다가 종점부근에서 슬그머니 내려버렸다.
하오6시쯤 이 회사 봉천동 종점사무실에 이 승객이 구청직원임을 내세우며 안내양 교육 잘 시키라는 항의전화를 걸어왔고 21일 상오8시쯤에는 본사에 항의전화를 했다. 같은 버스에 탔던 손님이라는 사람도 수석리 본사사무실에 항의전화를 해왔다.

<문책>
이 문제로 밤새 잠을 못이루던 장양은 21일 아침 최광재운영부장(49)등 간부에게 불려가 꾸지람을 듣고 사표를 강요받았다.
장양은 간부들로부터 『사장이 사표를 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
그러나 회사측은 사표를 종용하지는 않았으며 경위서를 내라고 했을 뿐인데 장양이 『더러워 못하겠다. 그만두면 되지않느냐』며 사표를 썼다고 주장했다.

<동료들 승차거부>
이 회사 소속 안내양들은 21일밤을 장양의 사체가 안치된 서울위생법원영안실에서 새운뒤 회사로 돌아왔으나 승차를 거부하고 사장 면담을 요구, 22일상오 회사버스들이 안내양없이 운행됐다.
안내양 60여명은 이날 상오9시30분부터 기숙사에서 박병오사장과 면담, ▲인간적 대우를 해줄 것 ▲격무를 덜어줄 것 ▲암행감사를 하지말 것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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