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 김해성<부산대교수·미술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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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름 쓰기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는 대개의 경우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림에다 자기 이름 석자만은 보다 크게 써 놓길 좋아한다. 이름 석자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관념은 어릴 때일수록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자기의 실체를 이름과 무관하게 떼어서 보질 못하고 이름을 통해서만 보는 것이다. 어린이가 무서운 장면을 보면 우선은 두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는 것 또한 자기가 보지 않으면 무서움은 면한다는 본능적이고 가장 간단한 논리의 반사작용이 아닐까.
어릴 때의 우리들은 누구든 무대의 주인공을 꿈꾼다. 그러나 노련한 배우일수록 이러한 무대의 주인공이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역을 맡은 동료배우는 물론, 오히려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게 연극을 가능케 한 스태프진의 역할이 무엇보다 값진 것으로 이해하여 끝내는 자기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중 때문에 자기가 있음을 진실로 깨닫게 된다.
개인의 기록이나 팀웍을 최선으로 하는 스포츠는 연극보다 더한 우리들의 참된 제스처 무대다. 이러한 무대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선수들이 벌이는 좋은 경기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값진 삶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올림픽중계로 열을 올렸던 매스컴은 이렇듯 무대에서 펼치는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데 열심이기보다 마치 이름 석자를 즐겨하는 어린이의 단순한 관심에만 맞춰주기나 하듯 메달의 열기만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느낌이다. 승부의 세계가 엄연한 것이 스포츠의 현실임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메달의 열기 못지 않게 메달의 실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슬기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차피 점수인생, 과거급제만 하면 만사형통이 되는 지난날의 드라머를 과신하고 있는 우리의 관념이 문제인 것처럼 메달의 열기만 일방적으로 고조시켰던 중계양상을 보면서 아직도 획일적인 입시경쟁의 추방도 요원할 것 같은 의구심이 앞섰다. 체력이 국력임이 틀림없지만 이러한 체력의 실체를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방식 또한 국력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어쩐지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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