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노병' 사라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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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설적인 한국계 전쟁영웅이자 존경받는 사회사업가였던 김영옥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지난해 12월 29일(현지시간) 숙환으로 별세했다. 86세.

민간 교육재단인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힘들더라도 열심히 살아갑시다'라는 뜻의 미국 구어)는 지난해 12월 30일 "김 대령이 29일 오후 10시40분쯤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고인은 최근 들어 방광암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는 등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왔다.

고인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현대 전쟁사에서는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전 세계 군인들에게는 이미 신화적 존재로 각인돼 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이민 간 한인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에 장교로 입대했다. 그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1943년. 전쟁이 한창이던 그해 9월 연합군은 이탈리아 상륙 작전을 감행한다. "로마를 해방시켜라"라는 대명제는 당시 연합군이나 독일.이탈리아 동맹군 모두에게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일본계 2세 등 주로 유색인종으로 구성된 '자투리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고인은 당초 부대를 이끌고 북아프리카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이탈리아 전선에 전격 투입됐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했다. 고인의 부대가 연전연승을 거듭하면서 로마 해방의 일등 공신으로 떠오른 것이다. 여세를 몰아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동북부 브뤼에르 지방을 탈환하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따로 없었던 셈이다.

45년 종전 직후 새로 구성된 이탈리아 정부는 고인을 '천재 작전통'이라 칭하며 최고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프랑스 정부도 같은 해 십자무공훈장(2등)을 줬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재심에서 "브뤼에르 지방을 되찾는 데 있어 가장 훌륭한 전과를 남겼다"며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2차대전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잠시 세탁소를 운영하던 고인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재입대했다. 그러곤 미 육군 7사단 31연대 1대대장으로 중부전선에 배치됐다. 이곳에서도 그는 전선을 60여㎞나 북상시키는 등 '불패 신화'를 재현했다.

미국 정부도 종전 후 고인에게 특별무공훈장(2등) 등 무려 7개의 훈장을 수여하며 전쟁영웅에게 경의를 표했다.

한국 정부는 2003년 뒤늦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고, 지난해 9월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 서훈을 결정했다.

종전 후 고인은 사회사업가로 변신했다. 한국전쟁 당시 그는 수백 명의 전쟁고아를 돌보며 "평생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재미 한국인과 일본인 등 소수민족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데 나머지 반평생을 바쳤다.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데에도 적극 앞장섰다. 99년에는 미 국방부 위촉으로 노근리 사건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장례식은 9일 샌타모니카 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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