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만」이냐 보안군이냐…기인 단정에 진통|조사위, 백85명의 증언듣고 발표만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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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필리핀의「베니그노·아키노」전 상원의원은 「암살」 되었는가 아니면 「사살」 되었는가-.
「아키노」 피살 1주기를 맞아 사건규명을 위임받은 5인진상조사위가 과연 범인을 밝혀낼수 있을지의 여부와 혼미률 거듭하는 필리핀 정국의 향방에 세계의 시선이 쑬려 있다.
지난해 8월 21일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필리핀의 민주화를 꿈꾸며 3년간의 미국망명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던 「아키노」 의원은 조국땅을 밟는 순간 군인들의 『엄중한 경호』속에서 총란에 맞아 숨졌다.
사건직후 필리핀 정부는 법인을 공산신인민군의 사주률 받은 「롤란도·갈만」이라고 발표했지만 분노한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10월들어 5인 진상조사위를 발족, 사건을 규명토록 조치했다.
조사위는「비라타」수상과 「베르」 참모총장, 퍼스트 레이디「이멜다」여사등을 포함한 1백85명의 증언을 듣고 지난 7월3일 공청회를 끝냈다. 「아그라바」위원장은「아키노」피살 1주기가 되는 8월21일까지는 국민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정부측 발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갈만」이 어떻게 1천여명의 경호원숲을 뚫고 들어가 정확히 「아키노」가 탑승한 비행기를 찾을수 있었는가 ▲5명의 목격자등은 「갈만」이 사건당시「아키노」의 앞쪽에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아키노」는 후두태 관통상으로 숨졌다▲사건당시 선국 ABC및 일본 TBS방송 기자가 녹음한 데이프에는 군인들의『쏴라』 『내가 하겠다』 는등의 말이 녹음돼 있다는 점등을 들어 「갈만」의 법행설을 부인하고 있다.
「아키노」의 죽음은 가뜩이나 지지기반을 잃어가던 「마르코스」 정권에 치명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닐라에서는 반정부데모가 계속되고 있으며 야당은 「아키노」 피살 1주기를 맞아 대규모 추모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5월의 총선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4백 여명의 사망자와 1개월여에 걸친 개표 등의 진기록을 낸 부정선거속에서도 야당인 민주야당연합(UNIDO) 은 총2백석 가운데 63석을 차지, 총선전보다 5배를 넘는 신장세를 보였다.
정국의 불안은 경제위기로 이어져 필리핀 정부는 35억달러의 외채상환을 4차에 걸쳐 지불유예했으며 인플레율은 연40%를 넘었다. 국내자본은 해외로 유츨되고 국제통화기금(lMF)은 6억4찬만달러의 대기성차관의 공여승인을 유보했으며 현금인츨사태률 견디다 못한 최대민간은행방코 필리피노는 지난 7월한때 문을 닫기까지 했다.
「아키노」의 죽음으로 야기된 「마르코스」 정권의 위기는 조사위의 진상 발표를 전후해서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가 범인을 「갈만」이라고 발표한다면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국민들이 반발할 것이고 경호군인이 범인이라고 할 경우 반정부의 물결이 전국을 휩쑬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아키노」피살이후 신인민군은 수도 마닐라에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민족의식에 눈뜬 지식인층은 반미·북일을 기반으로 좌파와의 연합가능성도 배재하지 않고 있어 필리핀의 혼란이 만만치 않은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필리핀을 「제 2의 엘살바도르」로 만들지 않는 길은 민주회복 밖에 없다던 「아키노」는 죽어서 필리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고 탄탄한 기반위에 장기집권을 구가하려던 「마르코스」는 오히려 분열과 내란에 휩싸이는 아이러니를 빚고 있다.

<김두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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