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씻은 「금메달 소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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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스포츠최고의 날-. 권투·양궁. 레슬링에서 3개의 금메달과 은1, 동2개 등 6개의 메달이 한꺼번에 쏟아진 12일, 전국은 감격과 환호에 휩싸여 올림픽 열기의 절정을 이루었다. LA올림픽결산을 하루 앞둔 이날 이른 새벽부터 밤잠을 설치며 TV·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 가슴 죄던 시민들은 잇달아 터지는 승리와 쏟아지는 메달에 박수와 만세를 터뜨리며 마음껏 어깨를 폈다. 전국 곳곳 입상선수들의 집에서는 온 동네 주민들의 축하잔치가 벌어지는 등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13일 마라톤 경기를 끝으로 한국스포츠에 새 기원을 연 제 23회 LA올림픽이 막을 내리는 순간 국민들은 이제 4년 뒤 바로 우리들의 행사로 다가온 서울올림픽에 벌써부터 자부와 책임을 두 어깨에 느끼는 모습이었다.

<시민표정>
일요일을 맞아 피서객들로 붐빈 서울역과 마장동·용산 시외버스터미널 등에는 온통 금메달 얘기로 화제의 꽃을 피웠고 길거리의 시민들도 TV 판매 대리점 앞에 발걸음을 멈춘 채 TV화면을 지켜보며 일요일 아침의 낭보에『신준섭 만세』,『서향순 만세』,『유인탁 만세』를 외치며 기뻐했다. 일부 시민들은 아예 일요일 야외나들이나 물놀이를 포기, 가족들과 함께 TV앞에 모여 앉아 LA에 서 날아드는 승전보에 귀기울이며 환호하고 즐거워했다. 회사원 이재욱씨 (33. 서울 우이동)는 『가족·친구들과 대성리 북한강으로 물놀이를 갈 예정이었으나 금메달 소식을 듣고 외출을 포기했다』면서 기뻐했다. 또 야간운행을 하던 택시운전사들은 신선수의 결승전이 벌어진 상오 4시 50분부터는 아예 운행을 포기, 기사식당에 끼리끼리 모여 앉아 라디오에 귀기울이며 『금메달을 따라』며 목이 터져라고 응원에 열중하다 신선수가 선전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택시운전사 이금룡씨(43)는 『신선수의 금메달 소식을 들으니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기분』 이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서선수의 집>
세계 제1의 궁사를 낳은 서향순 선수의 어머니 조향순씨 (50)는 뜬눈으로 밤을 새워 철야 기도를 한 때문인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상오4시까지 산신당에서 불공을 드리고 법당으로 돌아오니 스님께서 향순이가 금메달과 꽃다발을 목에 걸고 있는 꿈을 꾸었다고 해 금메달을 딸 것으로 꼭 믿었습니다.』 어머니 조씨는 피로도 잊은 채 딸의 쾌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모든 것이 부처님의 은공』 이라고 독실한 불심을 나타났다. 광주시풍향동 서선수의 집 앞에는 새벽부터 1천여명의 주민이 몰려 기쁜 소식을 기다리다 상오 9시쯤 『서선수가 중공선수를 9점차로 리드하고 있다』 는 중간전적이 전해지자『금메달은 틀림없다』 고 입을 모으며 잔치준비를 서둘렀다.

<유선수의 집>
서울 고덕동 주공아파트 202호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유선수의 부인남상복씨(27)는 5-5동점에서「큰 기술」로 남편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외딸 은미(2)양을 와락 껴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남씨는 이날 새벽 은메달이 확정됐을 때 유선수와 국제전화를 했는데 이때 아빠가 허리부상으로 결승전에는 진출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해 불안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했다면서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싶다』고 말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유선수의 고모는 유선수가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읜 후 아버지혼자 유선수를 뒷바라지하며 고생하다 6년 전에 숨겼다면서 이제야 아버지가 지하에서 편히 눈을 감을 것 같다고 했다.

<신선수의 집>
우리 나라 복싱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한 12일 상오 4시 55분 전북 남원군 대산면 길곡리 심곡부락 신준섭선수의 집은 온통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TV 앞에서 중계방송에 초조히 귀를 기울이던 신선수의 아버지 신병일씨(47)와 어머니 이명순씨(45), 남동생 문섭군 (16· 이리공고 3년)등 가족들은 서로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또 방안 과 집 앞을 가득 메운 50여명의 주민들도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고 마당에 잔칫상을 차려놓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기뻐했다. 밤새 가족들과 함께 금메달 소식을 기다리던 신선수의 복싱스승 김재봉씨(남원종합체육관장·남원군청직원)부부도 신선수의 우승소식이 전해지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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