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투쟁...집념 불사른 영광의 얼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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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이가 귀국하면 멋진 결혼식부터 올려야겠어요』 유인탁선수의 부인 남상복씨 (27) 는 이번 금메달이 4년동안 미뤄온 결혼식에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유선수가 태릉선수촌에서 금메달의 집념을 불태우는 동안 부인 남씨는 약혼식만 올린 몸으로 유선수의 딸을 키우며 남몰래 설움을 되씹었기에 이번 금메달 소식이 더욱 감격스러운 것이다. 전북 금제군 공덕면이 고향인 유선수가 레슬링을 시작한 것은 이리농고 2학년 때인 74년 6월. 고향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던 유두형씨 (79년 작고) 의 5남 4녀중 4남으로 태어난 유선수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잘 먹고 잘 뛰는」소년으로 자랐다. 이리중학을 거쳐 이리농고에 진학한 유선수는 씨름과 유도등에 손을 대다 우연히 레슬링 코치에게 발탁돼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몸집이 딱 벌어지고 힘이 좋아 레슬링엔 최적의 조건이었다. 레슬링을 시작한지 2주일만인 74년 7월 유선수는 문교부장관기쟁탈 학생 아마레슬링대회에 출전, 그레코로만형 페더급에서 우승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리농고 졸업 후 76년3월 김익종 감독에게 발탁돼 대한 주완공사에 입사한 유선수는 본격적인 레슬링수업으로 세계무대를 향해 발돋움 했다. 유선수는 79년 일본의 슈퍼월드컵대회에 대타로 참가, 은메달의 행운을 잡았다. 유선수는 뜻하지 않은 이 행운으로 79년 대한체육회가 선정한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그후 유선수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라이트급의 최강자 자리를 계속 지켰고 특히79, 80, 81년 전국 체육대회 3연패와 81년 루마니아 유니버시아드 대회 은메달, 82년 캐나다컵 금메달은 유선수의 선수생활 중 빛나는 업적으로 남아있다. 유선수는 유니버시아드 대회 은메달로 대통령으로부터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기도 했다. 유선수의 특기는 태클이 과감하고 허리기술이 뛰어난 점. 아무리 상황이 불리해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 「능구렁이」란 별명을 듣기도 한다. IQ 1백 25로 두뇌회전이 빠르다. 레슬링 이외에 유도가 초단이며, 축구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 태릉선수촌의 「펠레」라는 에칭을 듣기도 한다. 부인 남씨와는 고교 때부터 사귀어온 사이로 『올림픽때까지는 사생활을 포기하라』는 감독의 명령(?)에 따라 결혼식은 올리지 못한 채 81년 약혼식을 치르고 부부생활을 해왔다. 유선수는 주완공사로부터 월급 40만원씩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고덕 주공아파트에
14평 짜리 「마이 홈」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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