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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불법 이민자 막아라" 미국판 만리장성 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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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 멕시코 남자가 노갈레스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장벽을 올라가고 있다. 미 하원은 2주 전 양국 국경에 1130km의 장벽 설치를 골자로 한 불법 이민 방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인종차별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노갈레스(멕시코) AP=연합뉴스]

"국경의 장벽은 불법 이민자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미국)

"장벽 설치는 인종차별일 뿐 아니라 외국인 혐오증을 유발할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없다."(멕시코)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에 첨단 장벽을 가설하려는 문제를 놓고 양국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고 두 나라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 하원이 16일 국경 장벽 설치를 골자로 한 불법 이민 차단 법안을 통과시키자 멕시코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미 하원을 통과한 법안의 골자는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총 3200km)에 길이 1130km, 높이 3m의 이중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장벽 건설 비용은 2조2000억원으로 추산됐다.

◆ 멕시코, 중남미에 지원 요청=그동안 멕시코는 미국이 강제로 이민을 막기보다 합법적 이민을 늘리는 쪽으로 이민협정을 맺자고 주장해 왔다. 이런 가운데 법안이 통과되자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반발했다. 루이스 에르네스토 데르베스 외무장관도 "이민을 범죄시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거들었다. 데르베스 장관은 이번주 워싱턴을 방문,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과 이 문제를 협의하기도 했다.

멕시코 의회는 미국의 장벽 설치를 막기 위해 최근 중남미는 물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까지 편지를 보내 지원을 요청했다. 멕시코 의원들은 "법안이 미 상원까지 통과해 발효되면 멕시코는 상상하기 어려운 피해를 볼 것"이라며 "중남미가 힘을 모아 미국의 계획을 저지해야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 장벽 설치로 사상자 늘 수도=현재 월경이 자주 일어나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주 국경 일부에는 높이 3m의 울타리가 군데군데 설치돼 있다. 시카고 트리뷴지는 "네 개든, 다섯 개든 장벽이 많이 건설된다고 해서 불법 이민이 줄 것 같지는 않다"며 "오히려 월경하다 사상자가 더 늘어날 위험도 있다"고 전했다.

멕시코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멕시코인은 약 1000만 명이며,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불법 체류자로 추산된다. 국경을 넘다 숨지는 멕시코인은 한 해 약 500명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는 "장벽이 가장 효과적인 월경 방지책"이라며 "멕시코 티후아나 인근에 울타리를 설치한 뒤 1995년 52만4000명에 달했던 불법 이민자 수가 지금은 12만7000명 선으로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장벽 설치 계획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장벽 설치는 86년, 94년, 95년 등 몇 차례에 걸쳐 시도됐으나 모두 실패했다"며 "이번에도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전했다. 호세 앙겔 구리야 전 멕시코 외무통상부 장관은 "미국이 멕시코 등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정치인들도 잘 알고 있다"며 "법안을 합리적으로 처리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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