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이 지역주의 정치 대체할 새 화두 … 지나친 정치화는 금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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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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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연금정치’ 시대 본격 도래

연금정치의 플레이어는 정당뿐이 아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익단체들이 더욱 강력하고 현란한 정치 플레이어로 참가한다. 특히 공무원·군인·교사와 같은 특수직역 연금의 경우 기득권 그룹의 결속력이 강해 손대기 쉽지 않다. 이번에 공무원연금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제에 없던 국민연금을 ‘인계철선’으로 활용한 공무원노조가 대표적이다.

연금 갈등은 선거를 통해 정치 세력의 교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큰 파괴력을 지닌다. 스페인 의회는 1995년 연금 이슈를 선거 쟁점으로 삼지 않기로 여야 간 협정을 맺기도 했다. 김성주(보건복지위 간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유럽에선 연금정책이 정치판을 뒤집는 메가톤급 이슈”라며 “한국 정치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우리보다 앞선 서구의 연금정치는 오랜 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특히 1970년대 오일쇼크에다 저성장으로 연금 재정이 불안해지면서 연금 개혁이 정치의제로 떠올랐다. ‘사회보장→소비 촉진→성장’의 선순환이 ‘사회보장→노동비용 상승→기업경쟁력 악화→실업 증가’의 악순환으로 바뀐 게 결정적 계기였다.

은민수 경기대 교양학과 교수는 “유럽의 연금 개혁은 각국 정치 지형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영국처럼 대처 총리의 집권 보수당이 단기간에 급격한 개혁을 추진하는가 하면, 독일처럼 연립정권에서 타협에 의한 온건한 개혁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었다. 스웨덴은 좌파 사민당이 장기집권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개혁에 나섰다. 양재진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통령제와 보수 우위의 소선거구 다수제 의회를 갖춘 한국에선 영국 대처 정부처럼 단기적이고 공격적인 개혁이 이뤄질 개연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연금 자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그 같은 개혁의 큰 걸림돌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적연금에 대한 신뢰도가 외국의 경우 평균 50% 수준이지만 한국에선 20% 미만”이라며 “상당수가 아직 연금 수령도 못해 본 상태에서 돈을 더 내라니, 연금을 깎자느니 하는 논의 자체가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구에선 연금 개혁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과 내수 위축 가능성 등을 고려해 소득대체율을 건드리지 않는 ‘우회전략’을 쓰는 경우가 많다. 유희원(중앙대 사회복지학과) 박사는 “서구에서의 연금 개혁이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방향으로만 추진된 것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서구 선진 20개국 중 1990년과 비교해 2010년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떨어진 국가는 원래 소득대체율이 높았던 프랑스ㆍ스페인 등 6개국뿐이다. 대개는 소득대체율을 손대기보다 퇴직연령 연장, 출산 장려, 여성ㆍ청년실업 해소 등 노동인력을 늘리는 대책에 초점을 맞춰 왔다.

문제는 우리 정치권의 역량이 건설적인 연금정치의 정착을 보장하느냐다. 연금을 이슈로 삼았다는 것만 다를 뿐 여야 간 정쟁의 양상과 강도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이 때문에 연금의 정치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 개혁이 정부의 일방적 결정이나 정당 간 당리당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치인과 전문가ㆍ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실무그룹에서 논의케 해야 한다”고 했다. 스웨덴ㆍ독일 등에선 실무그룹을 통해 개혁을 추진하고, 정치권에선 연금의 정략화를 지양하는 협정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양재진 교수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부일수록 연금 개혁과 복지 수준이 높다”며 “결국 정부의 질이 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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