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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고수에게 듣는다] 스토리 주식의 달콤한 유혹

중앙일보

입력

먼 옛날 아프리카에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조그만 거미인 아난시는 하늘신을 찾아가 이야기를 달라고 요구하자 하늘신은 비단뱀, 호박벌, 표범, 요정을 잡아오면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말한다. 아난시는 꾀를 내어 요구조건을 만족시키고 결국 이야기가 담긴 항아리를 얻어낸 후 땅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때 이후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아난시 이야기’라는 동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처럼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인간은 스토리를 좋아해 왔다. 현대인들도 매년 수없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소비한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아난시 이야기’도 필자의 아이들이 차 안에서 계속 반복해서 듣는 동화 오디오 트랙 중 하나다. 그러고 보면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전래동화 카세트테이프를 끼고 살며 상상의 날개를 펴곤 했다. 스토리에 끌리는 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일 것이다.

꼭 충무로가 아니더라도 돈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위한 스토리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곳이 있다. 바로 여의도 주식시장이다. 세계를 석권할 바이오 신약, 중국 관광객이 싹쓸이하는 히트상품, 탁월한 효능의 건강식품, 귀금속 광산 등 주제도 다채롭다. 언뜻 들으면 황당하지만 자세히 들으면 설득력이 있고, 주가가 오르면 진실일 거 같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편하니 스토리의 매력에 많은 투자자들이 빠져든다.

스토리가 붙은 주식은 섹시하다. 하지만 그 뒤엔 치명적인 독이 있다. 주가는 기업의 펀더멘털에 수렴한다는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즉 주식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고평가 상태를 정당화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주가수익률(PER) 100배는 명백히 고평가를 나타내지만 신약이 임상을 통과해 대박을 칠 수 있다는 스토리를 믿는 순간 위험에 대한 경계심은 일순 풀린다. 스토리를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주가가 오르고 평가액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미래에 대한 확신은 더해진다. 점점 위험은 증가하는데 말이다.

실제로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30종목을 살펴보면 실체와 괴리된 가격을 받고 있는 종목들이 많이 눈에 밟힌다. 필자 역시 최근 코스닥 열풍이 기업들의 폭발적인 가치 상승이란 배경에 힘입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단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하다. 쥐꼬리만한 이익을 내는 회사가 1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는 건 스토리와 유동성의 결합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개인투자자들만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도 없는 문제다. 기업의 펀더멘털을 정확히 읽어내야 하는 제도권 애널리스트들조차 일부는 본래의 역할을 망각하고 스토리를 재생산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탓이다. 반면 스토리를 붙이기 힘든 저평가 주식들에 대한 평가는 무척이나 가혹하다. 싸지만 사지 말라는 결론이 무척이나 단호하다.

최근 투자자들을 가슴 아프게 했던 뉴스가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재료로 급등했던 회사가 결국 스캔들로 판명나며 상장폐지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었고, 두 번째는 건강보조식품을 히트시키며 시가총액이 무려 2조원에 이르렀던 회사가 부적절한 재료를 썼다는 의혹을 받고 주가가 연일 급락하고 있는 사건이었다. 이뤄지지 못한 스토리와 고평가된 상태가 만나면 이처럼 큰 화를 부르는 법이다.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야 성공하는 주식투자는 그래서 늘 어렵게 느껴진다. 스토리에 매료되는 본성,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최준철 VIP 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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