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동산 버블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최근 한국은행 박승(朴昇) 총재와 민간경제연구소 등이 부동산 값이 너무 올라 버블(거품)이 있다고 잇따라 경고하면서 부동산의 버블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심이 높다.

학문적으로 부동산 버블은 내재 가치에 비해 시장가격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나 현실적으로 이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부동산.금융 전문가들은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주택구매력.전셋값 등으로 미뤄 볼 때 현재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 아파트값에 거품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부동산 버블이 확산기에 접어들고 있어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고강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부동산 버블 판단 기준은=전문가들이 부동산 버블 여부를 따지는 잣대로 많이 쓰는 것이 매매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하 전세비율)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전세비율 하락은 아파트값이 그만큼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아파트 전세값 비율이 50%를 밑돌 경우 버블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텐커뮤니티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세값 비율은 45.3%로 올 들어 최저치다. 매매값은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중심으로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전셋값은 7주 연속 내렸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이 가계소득에 비해 너무 높은 것도 버블 정도를 따지는 기준으로 제시된다. 국토연구원 손경환 연구위원은 "세계은행이 최근 미국 등 1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택가격은 연간 가계소득의 5.2배 정도"라며 "강남권의 경우 10배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1분기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이 2백90만7천원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4분기에 비해 31% 정도 늘어난 점을 감안할 때 외환위기 이후 2~3배 급등한 강남권 아파트에는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가격 상승률이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버블의 한 근거로 꼽는다. 아파트값이 실물경기와 따로 노는 현상이 단기적으론 나타날 수 있으나 장기간 지속되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통계청과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1년 서울지역 아파트값 상승률은 평균 19.3%인 반면 소비자 물가상승률(4.1%)과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5.7%)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명목 GDP 증가율은 각각 2.7%, 8.1%에 그쳤는데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무려 30.8%나 됐다. 올 들어서도 실물경기가 위축되고 있지만 아파트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의 경우 지난 1월부터 지난주까지 각각 6.0%,10.1%(중앙일보조인스랜드.텐커뮤니티 조사) 올랐다.

◇버블은 강남 중.고층아파트가 심해=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책임연구원은 "막연한 재건축 기대심리로 급등한 강남권 중.고층 아파트에 거품이 많다"며 "7월 재건축 절차와 기준이 대폭 강화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되면 거품붕괴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업승인이 난 저밀도지구나 새 아파트의 경우 실수요가 뒷받침돼 중층아파트보다는 하락폭이 작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하지만 비수도권 아파트값은 거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 지역은 여전히 전세비율이 60%를 웃도는 곳이 많은 데다 값 오름세도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텐커뮤니티 정요한 사장은 "거품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 은행돈을 꾸어 투자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원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