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현길언의 『용마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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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학생들에게 시집과 소설집을 각각 한권씩 추천하여 평론이니 해설이니 하는것들은 일체보지말고 자신들의 순수한 느낌만으로 짤막한 보고서를 내게한적이 있다.
매우 흥미로왔다.
우선 놀란 것은 꽤 알려진편인데도 그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본격문학과 일반독서대중 사이의 거리는 멀다.
70년대에 그토록 고투하여 획득한 독자들울 80년대에 들어와서 몽땅 통속소설에 상납한꼴이 된 것이다.
독자들이 통속소설에 몰리는 이유는 그것이 비록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인생문제에 한 해답을 준다는 점에있을 것이다.
사실 독자들은 소설을 허구가 아니라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독서체험을 통해서 자신의삶을 비추는 한줄기 빛을 찾는다.
본격소설이 이러한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릴 때 소설을 버리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멸이나 냉소를 거두고 우리 사회의 내부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우리는 거기서 자욱한 갈증을 발견할 것이다.
소설가들이 이 자욱한 갈증을 창조적으로 포착하여 그 올바른 출구를 향해 치열한 포복을 전개할때 비로소 80년대 소설은 독자대중의 한가운데 다시 서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가령 학생들의 보고서를 보니 시집보다 소설집을 택한쪽이 많고 그 내용도 보다 충실했다.
역시 소실은 소설이다.
소설은 우선 그 분량 때문에 일정한 인내력을 요구하고 그견딜 힘이 보다 구체적인 깨달음으로, 지속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시대를 자욱하게 휘감고있는 갈증을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전환시키는데 있어서 소설이 맡고있는 역할이 중차대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 두자.
80년대 소설계에 주목할만한 신인이 드물다는 점은 누차 지적됐거니와 이때문에 현길언의존재는 더욱 귀중하다.
79년에등단한 이후 5년간의 활동을 중간결산하고 있는 『용마의 꿈』(문학과 지성사)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소설계가 든든한 신인작가 한분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경하하지 않을수 없다.
「귀향」(82)이후 이 작가는 끈질기게 제주도 이야기를 추구하였다.
특히 「우리들의 조부님」은 가장 우수한 단편의 하나로 꼽힐 터인데 「지나가는 바람에게」「먼 훗날」로 이어지는 연작속에서 4·3사건의 상처를 고통스럽게 응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어린 영웅담」에서는 일제시대를, 「용마의 꿈」과 「금령사굴본풀이」에서는 조선왕조시대를 배경으로 제주도 향토사를 종으로 꿰뚫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우선 이 작가의 시선이 과거로만 향해있다는 점이다.
물론 오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도 있으나 대체로 제주도를 다룬 작품에 비해 떨어진다.
왜 그럴까?
이 작가에게는 패배주의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데뷔작 「성무너지는 소리」에서 최근작 「이상한 끈」에 이르기까지 특히 오늘의 현실을 다룬 작품에서 그것은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 소설문학이 해결해야할 최대의 과제가 패배주의의 극복이라고 할진대 나는 「절망의 힘」이라는 역설을 생각하고 싶다.
천박한 낙관주의를 거부하고 절망을 우리들 힘의 원천으로 삼을때 우리는 원한으로 가득찬 과거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지금까지의 작업을 기반으로 바로 오늘의 살아있는 제주도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새로운 작업에서는 그에게 그토록 친숙한 제주도의 구비문학이 현대식으로 번안되기보다는 생동하는 형식속에서 육화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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