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못믿으니 서류만 넘쳐|불신의 대가가 너무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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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약간 쑥스럽긴 하지만 아무래도 내 주변의 이야기로써 서두를 꺼내는 것이 적절합성 싶다. 얼마전 복직가능의 통고를 받고 그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나는 12종류, 약30여장의 서류를 요청받았다. 원래 필요로 하는 구비서류가 16종류라니까 4종류는 제출하지 않은 셈인데,그중 3종류는 다시 기존의 서류에다 보완하거나 새롭게 작성해야 한다고하니 결국 대학교수 취직에 15종류 이상의 서류가 필요한 셈이다.
대학교수의 경우가 이렇다면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경우에는 묻지 않더라도 알만하다.
생활주변의 이러한 번거로움을 경험하면서 몇주전 한후배가 취직에 필요한 보증인서류를 갖추지못해 애태우던 것을 연상하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의 전사회구조에는 인간의 인격을 증명하기위해 점차 비인격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있음을 깨달을수 있게 되었다. 인감증명 대신 손수 쓴 사인이 더 확실하고 쌓인 서류뭉치보다는 한마디의 말이 더 든든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저 인격적인 방법을 물 건너 어느 사회의 것으로만 간주해 버릴 것인가.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많은 서류가 필요한 것은 불신과 부정직 때문이다. 당사자의 신용도를 갖가지로 증명하고자 하는 의도 못지 않게 인간의<정직하지 못함> 을 막아보고자 함이다. 그러니까 신의를 증명해야 할 서류들이 많이 요구될수록 그만큼 우리 사회의 신의상실과 부정직성은 더 반증되는 셈이다. 정직과 신의가 떨어질 수록 그것들을 보증할 공공기구가 필요하게 된다.
오늘날 국가의 공공업무중 상당한 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 업무가 많아질수록 우리가 내는 세금은 물론 국가적 에너지가 그러한 비생산적인데로 소모되어 창조적이며 건설적인 방면에는 그만큼 줄어든다. 앞서 말한 서류제출의 경우 각종 서류에 소요되는 물자,서류를 발급하는 인원,서류의 보관,서류를 발급받기 위한 시간과 금전등,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사회는 얼마나 이 부정직으로 인한 보응을 스스로 당하고 있는지 모를일이다.
현대사회가 그 복잡한 유기적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직과 신의의 바탕이 절대적이다. 경제활동에는 더욱 그렇다. 정직은 신의와 성실. 근면과 절제를 수반하지만, 부정직은 거것과 은페, 기만과 .도둑질을 유발하고 결국 그 사회를 불신으로 몰아넣는다.
정직과 부정직은 개인에게 귀중한 것 못지 않게 공공기관과 정부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지난해 일대 의혹사건을 파헤친 정부가 국민에게 『제발 믿어달라』 는 투로 호소한 적이 있음을 기억한다. 어찌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조국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염려스런 심경이었다.

<정직한 정부>라야 국민이 믿고 따르는 법이다. 그러기에 상앙은 새로운 『법령을 공포하기에 앞서 백성들이 정부를 믿지 않을까 두려워 삼장이나 되는 나무를 국도의 남문에 세우고 백성들을 모아 이것을 북문에 옮겨놓는자는 십금을 주겠다 하였으나 백성들이 그 말을 믿지 않고 감히 옮기지 않게 되자 다시 말하기를 그것을 옮기는 자는 오십금을 주겠다하니 한 사람이 이를 옮기매 곧 약속한 오십금을 주어』 정부가 백성을 속이지않고 신실하다는것을 분명히 밝힌후에 법령을 시행하려 하였던가.
그러기에 공자는 그의 제자 자언이 정치를 묻자 나라를 다스림에 식 (경제) 병(국방) 신 (신의와 정직) 의 필요성을 말하고 그중 병·식은 부득이하여 부족하게 되더라도 신은 끝까지 지녀야한다고 하면서<민무신 부입>이라는 정치요체를 역설하게되었던가.
「단테」 의 『신곡』 에는 지옥의 가장 고통스러운 밑층이 살인죄인이 가는 곳이요, 그바로 위가 거짓말 한 죄인이 가는 곳이라고 썼다. 그러한 전통 때문이었던지 서양의 기독교적 가치관에는 10계명중에서도 거깃증거를 금한 제9계명을 매우 중요시한다.
한국과는 판이하다. 가까운 일본의 어머니들은 가정교육에서 정직을 가장 강조한다. 이점 또한 우리와는 다르다.
「벤저민·프랭클린」은 『신용이 금전이며 이것을 충분히 이용만 한다면 거액에 달할 것이다』 라고 하여 신용의 상품화를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 정신의 가장 중요한 정직과 신용을 외면한채 자본주의화를 추진중에있다.
우리시회의 야기되고 있는 심각한 현상들의 근원이 정직성의 결여에서 비롯된다면 우리의 교육에서는 물론 개인·가정·사회생활 및 국정논의에 있어서까지 이 정직성의 생활화에 심혈을 기울여 더이상 사회의 파탄을 막아야한다. 이때 우리는 인도의 성웅 「간디」 가 자기나라의 가난 해결과 독립운동의 긴박하고 어려운 과제들을 두고도『거짓말은 비록 나라에 유익이 되더라도 해서는 안된다』 고 당부한 그 심경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마비되어진 개인의 인격과 사회의 공공성의 회복은<정직성>의 생활화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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