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술, 알고 마십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해롭다고 보시는지요. 순전히 몸의 건강만을 생각한다면 담배가 훨씬 해롭습니다. 질병 발생률이나 사망률 등 모든 보건지표에서 담배가 술보다 나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음으로 인한 교통사고나 가정파탄, 업무방해 등 사회경제적 요인까지 감안한다면 술이 담배보다 나쁘다는 것이 보건학계의 정설입니다. 알코올은 대뇌의 충동조절중추를 마비시켜 평소 성실했던 사람도 패가망신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자리가 잦은 연말연시 건강 음주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첫째, 자신의 주량을 알아야 합니다. 주량이란 단순히 의식을 잃지 않고 억지로 버틸 수 있는 술의 양이 아니라 음주운전이나 난폭한 행동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양입니다. 사람마다 유전적으로 다릅니다만 저는 가능하면 8잔 이내로 마실 것을 권유합니다.

술은 독한 술일수록 술잔의 크기가 작으므로 한 잔에 담긴 알코올은 주종(酒種)과 상관없이 10g 내외로 일정합니다. 평균적으로 간이 알코올 10g을 처리하는 데 대략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따라서 만일 밤 9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 다음날 아침 9시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 12시간 동안 알코올 80g을 처리할 수 있으므로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8잔이 마지노선입니다.

다만 폭탄주는 예외입니다. 폭탄주는 다른 술에 비해 한 잔에 두 배 가까운 알코올이 들어 있으므로 폭탄주만 마신다면 4잔 이내가 적당하겠습니다.

둘째, 물을 많이 마시기 바랍니다. '술은 물로 다스려라'란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수분이 보충될 것 같지만 실제론 반대입니다. 알코올이 소변 형태로 물을 바깥으로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술을 많이 마실수록 탈수 증세에 빠집니다. 과음 후 소변이 마렵고 목이 마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음주 전후 가능하면 많은 물을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억지로 술을 많이 마셔야하는 중요한 술자리에 가기 전엔 시판 중인 전해질 음료를 서너 컵 이상 마십니다. 술을 한 잔 마신 뒤엔 물도 한 컵 마십니다. 체액이 충분히 늘어날수록 같은 양의 술에도 덜 취하고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술 먹은 다음날 머리가 아픈 숙취를 덜 일으키는 술을 마시도록 해야 합니다. 발효주보다 증류주가 좋습니다. 증류주도 물과 알코올 외에 다른 성분이 섞이지 않은 것일수록 숙취를 덜 일으킵니다.

숙취로 제일 고생하기 쉬운 술은 포도주입니다. 포도주보다는 막걸리나 청주 등 곡주, 곡주보다는 맥주, 맥주보다는 위스키, 위스키보다는 소주가, 소주보다는 진이나 보드카가 숙취를 덜 일으킵니다.

포도주, 특히 적포도주는 레스베라트롤 등 강력한 항노화 물질이 많아 조금씩 마신다면 건강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작심하고 마시는 경우라면 조심해야합니다. 포도주의 알코올 도수인 13도 내외에서 부드럽게 넘어가며 위장을 자극하지 않고 흡수가 빠른데다가 포도주 특유의 향과 색깔 때문에 자칫 취하는지도 모르고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레이보이가 포도주를 선호하는 것은 충분히 의학적 근거가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