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실수 아닌 고의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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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고의적으로 조작된 것으로 판명됐다. 논문에 제시된 맞춤형 줄기세포 11개 중 9개는 없고 2개의 진위는 DNA 검사를 통해 밝혀질 예정이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위원장 정명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23일 이런 내용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대 노정혜 연구처장(사진)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05년 논문은 고의적 조작"이라고 단정했다. 노 처장은 또 "(고의적 조작에) 황 교수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라며 "황 교수도 일부 인정하고, 연구원들의 진술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와 노 처장의 발언의 의미를 풀어본다.

"2, 3번 줄기세포 DNA 지문 검사 중"

2005년 논문에 발표된 11개 맞춤형 줄기세포 중 지금 남아있는 것은 2, 3번뿐이다. 나머지 9개는 없다. 그나마 2, 3번조차 미즈메디병원의 냉동수정란 줄기세포로 '둔갑'했다고 황 교수는 22일 밝혔었다. 지난달 MBC PD수첩팀의 DNA 지문 검사에서도 2번 줄기세포는 환자 체세포의 DNA 지문과 달랐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2, 3번마저 맞춤형이 아니고, 따라서 2005년 논문의 맞춤형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도 조사위가 굳이 DNA 검사를 하는 이유는 2, 3번의 정체를 밝혀냄으로써 맞춤형 줄기세포의 존재 논란에 마침표를 찍자는 의미다. 조사위는 발표문에서 "2, 3번 세포주가 '과연'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인지는…"이라고 표현해 2, 3번의 가짜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황 교수는 테라토마가 몇 개인지도 속였다. 논문은 당초 7개 세포주에 테라토마가 형성됐다고 했다. 황 교수는 지난달 이를 3개로 수정했다. 조사 결과 2개 세포주에만 테라토마가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체세포를 나눠 줄기세포로 검사 의뢰"

거짓 자료로 DNA 지문 분석을 했다는 의미다. 같은 환자의 체세포를 둘로 나눠 하나는 체세포, 다른 하나는 줄기세포인 것처럼 위장해 DNA 지문 검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검사하면 두 개의 DNA 지문이 같은 것으로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이 결과를 놓고 맞춤형 줄기세포라고 속인 것이다. 2, 3번 줄기세포를 제외한 9개의 DNA 검증을 이렇게 해 사이언스에 제출했다.

조사위는 또 2004년 논문과 복제 개 스너피를 조사하고 있다. 이는 황우석 교수의 과거 연구 성과를 가능한 한 모두 재검증하겠다는 뜻이다. 조사위가 2004년 논문과 스너피 조사 방침을 공식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너피는 논문에 DNA 검증 데이터 등이 없기 때문에 복제된 것이 아니라 쌍둥이 개라는 의심을 받았다. 구체적인 조사 대상에 복제 소 영롱이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영롱이의 경우 연구 자료는 물론 발표 논문조차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고한 것보다 훨씬 많은 난자 사용"

황 교수는 연구에 사용한 난자 숫자를 속였다. 2005년 논문의 중요한 의미인 효율성을 조작한 것이다. 논문은 185개 난자에서 11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2004년 242개 난자에서 단 하나의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었던 것보다 효율이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용된 난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은 1200여 개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설령 맞춤형 줄기세포가 있더라도 효율성이 떨어져 논문의 성과가 보잘것없다는 뜻이다.

2개의 줄기세포 데이터를 11개로 불려 만든 것은 '고의적 조작'이다. 황 교수는 2, 3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 분석, 테라토마 형성 등 실험 데이터를 조작해 11개 줄기세포가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16일 "테라토마 사진에서 결정적 실수가 있었다. 사진 촬영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인위적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었다. 그러나 '고의적인 조작'이라는 게 조사위 결론이다.

"황 교수 중한 책임 면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황 교수는 파면 등 중징계를 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황 교수는 논문의 '고의적 조작'에 직접 개입했다. 본인도 일부 인정했고, 연구원들의 진술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작 내용도 단순한 실수로 볼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이다.

연구의 진실성을 크게 훼손한 중대한 행위라는 것이 조사위의 판단이다. 거짓 자료로 분석 결과를 만들어내고, 자료를 크게 부풀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의 원천기술이 실제 있더라도 논문의 '고의적 조작'으로 국민과 세계를 속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가 이날 황 교수의 사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파면 등 징계를 받아야 할 처지이므로 스스로 사표를 낼 처지가 아니라는 의미다. 감사원도 감사 준비에 들어갔다. 정부에서 지원한 연구비를 엉뚱한 데 사용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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