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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반값 통화·데이터 … 구글·페북·애플 IT 공룡들 통신시장 침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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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모씨는 스마트폰을 통해 출퇴근 지하철역에서 영화를 내려받아 보고 업무상 전화도 하루에 두 시간 넘게 한다. 문자메시지도 하루 60건 이상 주고받는다. 그런데 매달 통신요금은 3만원뿐이다. 데이터 사용량만 요금을 내고 음성전화와 메시지는 공짜다. 한 달에 6만원이 넘던 통신비 부담이 절반 아래로 줄었다.”

 가상으로 꾸며본 스마트폰 이용 사례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머지않아 열리게 됐다. 소수의 이동통신회사가 장악하던 시장에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속속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서비스 시장의 틀이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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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두 주자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인 구글이다. 구글은 지난달 22일 ‘프로젝트 파이(Project Fi)’란 이동통신 서비스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가격과 기술에서 기존 상품과 차원이 다르다. 프로젝트 파이는 월 20달러(약 2만1600원)에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를 무제한 쓸 수 있다. 데이터 사용료는 1기가바이트(GB)당 10달러인데 사용하고 남은 데이터는 다음달 요금에서 환불해준다. 쓰다 남은 데이터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시스템은 미국과 한국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에 사는 임성환(42)씨는 “지금 쓰는 통화·문자 무제한에 월 3GB 데이터 상품의 매달 통화요금이 80달러 정도인데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면 40~50달러로 줄어들 것 같다”고 기대했다.

 저렴하고 합리적인 요금 시스템도 눈길을 끌지만 백미는 통신 품질이다. 구글의 커뮤니케이션 제품군 부사장인 닉 폭스는 “우리는 무선랜(와이파이)과 제휴사의 LTE 네트워크 사이를 끊김 없이 전환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폭스 부사장이 말한 ‘끊김 없는 무선 연결성’은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신기술이자 프로젝트 파이의 핵심이다.

 지금까진 사용자 근처에 더 강한 무선랜이 있어도 사용자가 처음에 잡은 무선랜을 끊지 않으면 더 강한 무선랜을 이용할 수 없었다. 또 무선랜에서 LTE 같은 이동통신망으로 갈아탈 때도 일단 사용하던 무선랜을 끊고 새로 접속해야 했다. 그러나 프로젝트 파이에서는 무선랜과 이동통신망 중 신호가 더 강한 쪽으로 끊기지 않고 자동으로 전환된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모바일 인터넷 전화’ 등이 가능한 메신저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블룸버그·중앙포토]

 구글은 미국의 3위 이동통신사업자 스프린트와 4위 사업자 T모바일과 제휴해 두 업체의 이동통신망을 빌려 쓴다. 그런데 두 업체의 통신망을 하나의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면서 위치에 따라 더 신호가 강한 이통사의 망으로 갈아탈 수 있게 한 것이다. 기존 이통사의 망을 빌려 서비스를 하는 건 국내의 ‘알뜰폰’ 사업자와 같다. 하지만 두 통신사의 망을 동시에 이용하는 방식, 그리고 무선랜과 이동통신망을 끊김 없이 연결하는 것은 프로젝트 파이만의 경쟁력이다.

 물론 단기간 내에 프로젝트 파이가 이동통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 우선 프로젝트 파이를 쓸 수 있는 단말기가 구글의 최신 스마트폰 ‘넥서스 6’뿐이고 서비스 지역도 초기엔 북미로 한정돼 있다. 구글이 이동통신 사용자에게 돈을 받는 건 기존 이동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망을 빌려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글의 계획대로라면 통신 비용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구글은 풍선을 띄워 세계 각국에 무선랜을 공급하는 목적의 ‘더 프로젝트 룬(The Project Loon)’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무선랜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데이터 이용 요금은 적어지게 마련이다.

 또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은 자사가 보유한 세계 1, 2위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과 메신저앱을 통한 모바일 인터넷 전화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달 27일 미국과 영국 등 18개국에서 메신저앱을 통한 영상통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미 인터넷 통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페이스북 메신저는 이번에 영상통화 기능을 추가하면서 통신 서비스 기능을 보다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애플은 하반기에 출시할 아이폰 6S에 직접 만든 가입자 인증용 ‘심(SIM)’을 넣어 영향력 강화에 나선다. 구글은 최근 ‘프로젝트 파이’라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공개하고 시장 공략에 나섰다. [블룸버그·중앙포토]

 페이스북은 무선랜 확충에서 경쟁업체인 구글과 뜻을 같이한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세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하기 위해 구글과 협력하길 원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네트워크 서비스업체인 투아이피 김태정 대표는 “카톡 같은 메신저가 무료 문자 시대를 열었듯 무선랜을 활용하는 인터넷 전화가 음성통화를 사실상 공짜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미국에서 인터넷 전화 관련 사업이 활발한 것은 ‘망 중립성’ 원칙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앱 다운, 모바일 인터넷 통화, 동영상 다운로드 등 여러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망에 따라 이를 차별화할 수 없게 한 것이 ‘망 중립성’이다. 미국에선 이 원칙이 잘 지켜져 데이터를 이용한 인터넷 통화 서비스에 걸림돌이 없다.

  애플은 이동통신사 주도로 돼 있는 시장의 뿌리 깊은 유통 구도를 바꿀 태세다. 애플 전문 매체인 애플 인사이더는 최근 “애플이 올 하반기에 가칭 ‘아이폰 6S’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때 애플의 가입자 인증 ‘심(SIM)’을 탑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심은 가입자 정보를 담은 일종의 모바일 신분증이다. 따라서 애플이 이통사 것이 아닌 자신들의 심을 직접 탑재한 아이폰 6S를 출시할 경우 단말기 유통의 주도권은 이통사에서 제조사로 넘어간다. 이렇게 휴대전화 제조사가 유통까지 도맡는 시스템이 정착되면 기존 이통사는 통화료와 통화 품질로 서비스 경쟁을 해야 한다. 가입자 입장에선 더 싼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글로벌 IT 기업의 발 빠른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이광복 교수는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우리나라 통신 소비자의 개인정보까지 차지하게 되면 글로벌 기업의 힘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국내 통신 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국내 통신업체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이동통신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내 이통사들은 구글 등이 국내에서 사업을 벌이는 건 자신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구축해놓은 통신망에 ‘무임 승차’하는 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무선랜의 속도는 떨어지게 마련이어서 이를 보완하는 비용을 누가 댈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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