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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무 걸려” “증거 안 된다” … 검사 출신 홍준표 ‘계산된 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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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도로 계산된 다목적 발언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 후 자신의 1억원 수수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쏟아낸 발언에 대한 한 검찰 관계자의 평가다. 공식석상에서의 해명 말고는 개별적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다른 의혹 대상자들과는 달리 홍 지사는 연일 다양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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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에는 여론을 겨냥한 발언이 중심이었던 홍 지사의 해명은 이후 법리적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다.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2일과 3일 금품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데 반격하는 모양새다.

 검사 출신인 홍 지사는 지난달 10일 첫 해명에서 “당 대표까지 한 사람이니 누가 (자신의) 측근을 빙자해 (성 전 회장에게) 접근할 수 있다”며 배달사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13일에는 페이스북에 “다른 경선 후보도 많은데 왜 제가 표적이 됐는지는 검찰 수사로 밝혀지리라 본다”며 억울한 심정을 내비쳤다. 같은 달 21, 23일에는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내가 왜 성완종 리스트란 올무에 얽히게 됐는지 그것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목적이 담긴 폭로의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수사팀이 홍 지사 측 일정 담당 비서인 윤모씨에게 소환을 통보하는 등 조사를 본격화한 다음에는 주로 법리적 쟁점들을 거론하고 있다. 홍 지사는 지난달 29일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그 내용을 앙심이라고 판단했다”며 “자살하면서 쓴 일방적 메모는 반대심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에는 e메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터뷰 내용이) 허위·과장과 격한 감정이 개입돼 있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3일에도 “나를 수렁에서 건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번에는 팻감(다른 목적에 사용된다는 의미의 바둑용어)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일련의 발언들에 대해 상당 부분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무조건 관련 사실을 부인하기보다는 의혹을 일부 인정하면서 자신에 대한 방어막을 쳤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팀이 핵심 증거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상태에서 증거 문제를 건드렸다. 성 전 회장이 숨진 만큼 메모와 인터뷰 녹취록을 증거로 채택하기 위해선 ‘특신상태(특별히 믿을 수 있는 상태)’임을 검찰이 입증해야 하는데 메모 출처부터 작성경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발언들이 오히려 홍 지사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성 전 회장이 앙심을 품고 한 발언인 만큼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성 전 회장의 인터뷰 녹취록을 보면 홍 지사에 대한 앙심은 드러나지 않고 다른 이들에 대한 섭섭함만 주로 나타난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는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에 한 인터뷰인데다 주변 정황 증거들을 보강하면 특신상태가 인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요 수사 대상인 이완구 전 총리 측은 홍 지사와는 달리 변호사를 선임한 것 외에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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