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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아내와 다투고서 아이디어 번쩍 … 함께 써요, 차량 240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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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카쉐어링(차량공유) 기업 ‘쏘카’의 김지만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시 성수동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쏘카 차량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공유차량이 개개인이 가진 소유차량보다 더 많아질 그날이 곧 올 것”이라며 “1~2년 내에 아시아 대도시들에도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쏘카 홈페이지]

“그 시간에 꼭 당신이 써야해? 나랑 애들은 택시 타라고? 싫어!”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주 중엔 하루 23시간을 주차장에 ‘모셔 놓는’ 차, 어쩌다 한번 차가 꼭 필요할 때 실랑이를 해야하는 상황. ‘세컨드 카’ 한 대 뽑을까 싶다가도, 경제적 부담 생각에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마는 이 순간. 여느 집에선 부부싸움으로 끝나고 마는 딜레마에서 비즈니스를 발견한 사람이 있다. 카쉐어링(Car Sharing·차량공유) 기업 ‘쏘카’(SOCAR)의 김지만(39) 대표다.

 김 대표는 “아내와 다투고 난 뒤 주위를 둘러보니 주차장에서 놀고 있는 차들이 굉장히 많더라. 그런 자동차 열 대만 (공유차량으로) 놓고 빌려 쓸 수 있다면 집집마다 불필요한 싸움과 비용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렌터카 천국 제주서 실험 뒤 전국으로

 결심이 선 김 대표는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2010년 12월, 세번째 퇴사다. 한양대 경영학과·고려대 경영학석사(MBA)를 거친 그는 외국계 회사 재무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포털 다음커뮤니케이션(현 다음카카오)으로, 다시 투자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맨땅에 헤딩을 하더라도 내가 만들어서 키우는 게 재밌지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는 일(회계)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첫 번째 이직, “다른 업종에서 유망한 기업을 발굴하고 싶던” 차에 두 번째 이직을 했다. 이번에도 도전이다. 주변에선 ‘자동차를 사회적 지위로 여기는 문화에서 카쉐어링 사업이 되겠냐’ ‘자동차 갖고 도망가면, 사고나면 어떡하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음반 소장이 당연시됐지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음악도 빌려듣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눈을 해외로 돌려보니 회원들에게 차를 30분씩 빌려주는 서비스는 스마트폰을 만나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2000년에 창업해 당시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던 미국의 집카(ZipCar)가 그랬다.

 그는 바로 사업계획서를 썼다. 무대는 제주도. 다음에서 일하던 계기로 살기 시작한 제주, 가만보니 제주도가 카쉐어링 실험에 최적이었다. 대중교통망이 촘촘하지 않아 평범한 집에서도 자동차 두어 대를 굴렸고, 관광 성수기만 지나면 주차장에 렌터카 수 백대가 잠을 자는 섬이었다. 관광객도 달라져갔다. 올레길걷기가 유행하자 3~4일씩 차를 빌리는 것을 부담스러했다. 변화 가능성이 보였다.

 김 대표는 2011년 11월, 제주시에 쏘카 사무실을 열었다. 소셜벤처 육성기업인 SOPOONG(소풍) 등에서 딱 1년치 운영비를 유치했다. 1년 안에 승부를 내겠다고 이를 악 물었다. 하지만 현실은 산 넘어 산이었다. 김 대표는 “상상도 못했던 규제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고 말했다. 카쉐어링을 하려면 광역시 이상 지역에선 최소한 차량 100대를 소유해야 했다. 갓 창업한 벤처로선 여간 부담스러운 조건이 아니다. 자동차를 빌려줄 장소도 렌터카업체의 직영 영업소나 공항·항만 등으로 제한됐다. 직영 영업소는 관련 조합에 신고해야 한다. 골목길 주차장 한 칸을 곳곳에 확보하는 게 중요한 카쉐어링과는 안맞는 규정이었다.

규제의 벽과 씨름한 끝에 차량과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2012년 3월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제주도 구석구석에 있는 쏘카존에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회원들 의견 반영 … 카풀도 도전

사진은 수도권에서 쏘카를 빌릴 수 있는 쏘카존 표시. [신인섭 기자, 쏘카 홈페이지]

스마트폰으로 사용시간을 예약하고, 스마트폰 앱으로 차 문을 열고, 사용 후 제자리에 주차하면 반납이 끝난다. 최소 30분부터 이후엔 10분 단위로 빌릴 수 있게 했다. 신용카드 정보를 회원가입 때 입력해두면 GPS 기반으로 계산된 주행거리에 따라 이용료와 유류비가 결제됐다. 현대 아반떼를 30분 빌리는 데 이용료 3940원(주행요금 km당 170원 별도)이면 됐다. 쓴 시간만큼 10분단위로 돈을 내면 된다고 알려지자, 대학가와 아파트 단지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렌터카 영업소에 찾아가 복잡한 서류를 작성하고 차 키를 받는 번거로움을 없애자 관광객들도 모여들었다. 사고시 보험은 자차 파손분에 대해서만 자기부담금(30만~50만원 한도)을 내면 된다.

 김 대표는 “신용카드 정보 공개에 민감한 국내 정서에서 가입자가 늘어나는 서비스라면 규모를 더 키워도 되겠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초기 투자금이 바닥날 무렵 그는 ‘서울 상륙’을 결심했다. 마침 공고가 난 서울시 차량공유(나눔카) 사업자 자리를 따내기 위해 책 한 권 분량의 계획서를 썼다. 김 대표는 “단순히 30분 단위 차량 대여가 아니라 차를 나눠쓰는 ‘커뮤니티’가 있다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쏘카를 자주 이용하는 쏘친(쏘카친구)들과 저녁식사 번개모임을 열어 사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차량별로 같은 차를 빌렸던 사용자들끼리 댓글로 후기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강조했다. 그러자 차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쏘카를 타고 햄버거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서비스나 자동차 극장을 이용한 경험들이 SNS에 올라오고, 일부 사용자는 의무사항이 아닌 세차까지 했다. 쏘카 회원수(현재 60만 명)는 지난해 초에 비해 7배 이상 급증했다.

“2~3년 내 기업공개 … 아시아 진출”

 빠른 성장에는 접근성 좋은 자리에 주차장 거점을 많이 확보한 영향도 컸다. 김 대표는 “카쉐어링은 앱 하나로 하는 우아한 비즈니스가 아니다”며 “주차장 한 칸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노가다’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중교통 사각지대이면서도, 누구나 찾기 쉬운 지점을 찾아야 했다. 외부인에 좀처럼 문을 잘 열지 않는 대학과 아파트단지를 설득하고, 노른자위 땅에 있는 주차장업체 사장님들에게는 음료수를 들고 뛰어갔다.

 이런 발품으로 쏘카는 부산·대구·대전·광주 등 전국 52개 도시에 진출해 있다. 전국 1400여 쏘카존에 2400여 대의 쏘카 차량이 매 시간 들고난다. 대기업 틈에서 벤처기업인 쏘카는 ‘최초’ ‘1위’ 기록도 주도한다. 회원수 1위에 이어 카쉐어링업체 최초로 차량 2000대도 돌파했다. 쏘카의 올해 매출 목표는 지난해(147억원)의 3배 이상인 500억원으로 높였다. 김 대표는 “2~3년 내 기업공개(IPO)를 하고, 아시아의 주요 대도시로 쏘카 모델을 확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전하기 좋아하는 그는 5월에 새로운 분야에 진출한다. 글로벌 차량공유기업 우버(Uber)를 비롯해 수많은 벤처들이 시도했지만 실패한 ‘카풀’이다. 지난달 29일 안드로이드 앱 ‘쏘카풀’을 공개했다. 쏘카의 차량이나 자가차량을 이용해 함께 출·퇴근할 사람들을 이어주는 실시간 ‘카풀 매칭’ 서비스다. 현행 법상 카풀은 출퇴근 목적이나 천재지변 등 예외적인 상황에만 허용된다. 이 때문에 우버는 “카풀 목적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라고 주장해왔다.

 김 대표는 현행법을 감안해 판교테크노밸리처럼 특정 지역에서 쏘카로 함께 퇴근하는 모델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당분간은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김 대표는 하고 싶은 게 더 있다. “차량 한 대를 하루에 11명까지 나눠쓰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런 카쉐어링 사용자가 1000만 명이 되면 사회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구글의 무인(자동주행) 자동차 개발 속도를 보면, 쏘카를 스마트폰으로 호출해서 쓸 시대도 머지 않았어요. P2P(개인간) 차량공유도 시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웃집 차를 빌려쓸 날을 그가 준비하고 있다.

글=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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