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연말정산 논란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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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우리 시대의 소명은 한국형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념과 정파, 세대와 지역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1948년 국권을 회복한 이후 지금까지 매 시대의 소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이념을 채택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추진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복지국가를 완성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에 직면하고 있다.

 복지국가란 우리의 번영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효율성과 공평성의 사회적 조화점이다. 이를 위한 과정으로 2013년 정부는 조세·재정·규제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조세정책에서는 기존의 효율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평성의 수준을 높이고, 재정정책에서는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정부 회계의 모호성을 극복하며 빈곤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규제정책에서는 개인의 창의와 활력이 발휘되어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각각의 방향을 정리했다. 각 정책수단의 기능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면 우리 사회의 효율성과 공평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정책수단의 역할 분담에 따라 조세정책은 세율 인상과 세목 신설이라는 직접적 증세보다 ‘비과세·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세정개혁을 선택했다. 직접적인 세금 증가는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세정개혁을 통한 세수 확보가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비과세·감면 축소는 조세체계의 단순성과 공평성을 강화하는 것인데, 2013년 소득세법 개정에서는 연 급여 5500만원을 기준으로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소득공제를 저소득자에게 유리한 세액공제로 전환했다.

 이러한 세법개정의 효과는 2015년 1월 비로소 근로소득자들이 절감했다. 개정세법이 적용되는 2014년도 소득세가 이때 정산되었기 때문이다. ‘13월의 세금폭탄’으로 표현되는 이 논란은 두 개의 비판과 한 개의 의문으로 압축되었다. 저출산 대책이 필요한 시기에 왜 자녀 양육과 관련된 공제를 축소하는가. 중·저소득층의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저축에 왜 공제를 축소하는가. 과연 정부의 발표대로 5500만원 이하 소득자의 세부담은 늘지 않았을까?

 정부와 여당은 두 개의 비판에 대해서는 소급입법을 통해 보완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개의 의문에 대해서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근로소득자 1619만 명의 연말정산 전체를 분석해 그 결과를 파악했다. 5500만원 이하 소득자 1361만 명의 전체 세금은 4279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들 중 15%인 205만 명의 세금은 증가했고 증가자 1인의 평균 증가금액은 8만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5500만원 이하 소득자의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정부 발표를 뒷받침하는가 아니면 뒤집는 것인가? 우리는 이 어렵고도 난해한 의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뿐만 아니라 서로 상반된 시각의 비판들도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왜 정부는 납세자 개개인의 세부담이 아닌 소득구간별 평균을 통해 효과를 판단하는가. 왜 과세미달자를 과세대상자로 간주하며 세금이 증가한 소득자의 비율을 과소평가하는가. 왜 법인세율을 인상하지 않고 소득세 논란에 함몰되어 있는가. 왜 정부는 소급입법이라는 정치권의 비정상적 주장을 수용하는가. 왜 5500만원 이하 소득자의 면세범위를 확대하며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 원칙을 훼손하는가.

 이들 비판 하나하나는 나름 일리가 있고 한 번쯤 해 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가 소득자의 개별 사정을 일일이 파악하며 그 피해를 해소할 만큼 정책적 여력이 충분하지는 않다. 또한 효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도 조세정책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2013년 세법개정 때 상위 소득자를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번복시킨 정치적 논란의 전 과정을 되돌아본다면 정부의 정책적 입장을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각종 비판에 대해 이런저런 해명과 또 다른 재반론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유의해야 할 사실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7000만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 110만 명의 세금이 1조5710억원 증가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복지국가를 원한다면 이들에게 증세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를 기대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지금 이들에게 충분한 경의를 표하고 있는가.

 우리는 매번 정치적 논란에 휩쓸려 우리 시대의 궁극적 소명, 한국형 복지국가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지속가능한 효율성과 공평성의 사회적 조화점을 찾는 일, 여기에는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또 일부 사람의 의지와 몇 차례의 시도로 그 아름다운 균형점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이런저런 시도와 논란 속에서도 긍정적인 교훈을 찾아내며 우리 모두가 기꺼이 세금을 납부하는 그러한 균형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정치권의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우리가 예의주시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