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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비정상적 사면을 정상화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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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발전하게 됨에 따라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군주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절대적 권위다. 하지만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들이 일부 있다. 전제군주의 대권에서 유래된 ‘사면권’이나 ‘통치행위’가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사법제도의 발달에 따라 그 인정 범위를 계속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 현대적 경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십만 내지 수백만 명을 특별사면하고 삼일절과 광복절, 개천절 등에 맞춰 정기적으로 특별사면을 하는 등 사면권의 남용이 문제된 바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비판에 따라 대통령 사면권의 행사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최근 성완종, 이석기 전 의원들의 사면에 대한 비판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다시 사면의 의미와 개선 방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사면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법치와의 충돌이다. 사면권의 뿌리가 ‘법을 초월하는 군주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었고, 정상적인 사법 절차에 따라 형벌이 부과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효화하는 것은 사법 절차의 존재 의미 자체를 흔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치국가에서 사면권의 행사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말 그대로 예외적으로만 인정돼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면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사법부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게 아닐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리 사법 절차가 잘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불합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브레이크와 같은 장치로서 사면제도를 존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법의 이념은 정의(正義)이지만, 법적 판단이 항상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사법이 법치의 최후 보루라고 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이 100% 정의롭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의 차이도 있고,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법원도 전원합의체에서 판단을 내리고, 새로운 증거에 기초한 재심으로 사법부의 판단이 번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법적 판단과 관련해 가장 미묘하고 민감한 문제는 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이 충돌하는 경우다. 법이 추구하는 정의와 정치가 추구하는 정의가 다르지 않은 것이 정상이지만, 미묘한 시각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로 인해 사법부 스스로가 국가원수의 통치행위를 의식해 고도의 정치성을 갖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을 회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며, 때로는 대통령이 사면권 행사를 통해 사법부의 판단을 뒤집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권한의 오·남용이다. 예컨대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의 범인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던 김현희의 경우 그러한 사법적 판단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김현희를 사형시키는 것보다는 살아서 당시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증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라면, 사면권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행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인, 기업인, 고위 공직자 등에 대해 대규모 사면을 반복하는 것은 명백한 권한의 남용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통합이 아니라 갈등과 불신만을 키우게 된다는 것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된 바다. 최근 성완종이나 이석기 전 의원의 사면뿐만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사면들이 결국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됐으며, 그 부정적 파급 효과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그러한 불신의 방증이다.

 시대에 맞게 사면권을 행사하려면 우선 사면권 행사의 절차를 합리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사면권을 개헌 없이 축소 또는 제한하기는 어렵다. 또한 대통령이 사법적 판단의 결과를 뒤집는 것을 막기 위해 사면의 실체적 요건(예컨대 특정 범죄나 특정인에 대한 사면의 금지)을 추가하는 것도 곤란하다. 하지만 현행 사면법상의 사면심사위원회를 실질화함으로써 오·남용을 축소시키는 기능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사면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단계부터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공무원이 사면 심사에 참여하는 것을 최소화시키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심사 기간을 충분히 두어야 하며, 인사청문회처럼 사면권 행사 이전에 심사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면권의 성질상 사면심사위원회의 검토 결과가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심사 과정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실질적인 구속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 모두가 사면권의 의미와 그것이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는 경우를 올바르게 알고, 그 바탕 위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말 그대로 무겁게 행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면권 행사는 그 하나하나가 역사에 기록돼 평가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남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