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글로벌 기업들의 춘추전국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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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의 시가총액이 세계 최대 컴퓨터 업체인 IBM과 맞먹는다. 7년 전 설립된 구글의 종업원은 1600여 명에 불과한 반면 120년 전통을 자랑하는 IBM은 32만9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내년 생산량 목표를 906만 대로 늘려 잡아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고 선언했다. 이 여파로 75년간 세계 정상에 군림해 온 GM은 존폐 기로에 섰다. 주가는 23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고, 도산을 점치는 경보음이 요란하다.

지금은 글로벌 기업들의 춘추전국시대다. 순식간에 운명이 엇갈린다. 경쟁력이 유일한 기준일 뿐 규모나 전통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다. 피나게 경쟁력을 키워 온 기업들은 거대시장을 지배하며 승승장구하는 반면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예외없이 낭떠러지에 몰리고 있다. 어떤 기업이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살얼음판이다.

너무 흔해 빠졌지만 '정신 차려야 산다'는 격언만큼 이런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경우도 없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미리 대비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독창적인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이런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전과 달리 국내로 눈을 돌리면 암담한 상황이다. 반기업 정서는 여전히 기업가 정신을 짓누르고, 단기적인 경제지표에만 온통 신경이 쏠려 있다. 침몰하는 잠재성장률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설비 투자 확대나 과감한 구조조정은 일부러 외면하는 상황이다. '균형 성장' '경제 올인' 등 지극히 정치적인 구호들만 난무하고 있다.

내수 침체와 고유가 속에서 그래도 경제성장률은 올해 3.9%(예상치), 내년에는 4.5~5%에 이를 전망이라고 한다.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일부 기업과 수출 호조 덕분이다. 고군분투하는 기업들의 사기를 꺾어선 안 된다. 그들마저 국내 상황에 휘둘리면 우리 경제가 설 땅은 없다. 기업 전쟁 시대에 기업보다 먼저 우리 사회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