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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서열 권한 명실상부한 체제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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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투서 한통이 민정당을 벌컥 뒤집어 놓았다. 정내혁 대표위원이 주로 부동산으로 큰 치부를 했다는 투서가 문제되어 취임 8개월만에 물러나고 새로 권익현 대표위원-이한동 사무총장의 진용이 짜여졌다.
투서 한통으로 당직개편까지 단행해야 한데는 민정당도 고충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무기명 투서는 불문에 붙이고 투서인을 가려내 오히려 처벌한다는 것이 투서처리 지침으로 돼있다.
그러나 이번 투서의 정내혁 대표의 치부에 관한 증빙서류까지 첨부돼 있고 재산이 납득 선을 넘는데다 소문까지 파다해 그냥 덮어 둘 수 없었다는 얘기다.
특히 청렴·정화 등을 가장 중요한 정당성의 기반으로 내세워온 제5공화국의 집권당으로서는 투서라고 해서 그냥 덮어 둘 수만은 없었다는 것. 그래서 전격적으로 이번 개편을 단행하고 투서인은 투서인대로 처벌하며, 해명은 정 대표가 스스로 나서 하도록 하는 선에서 처리방안이 마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가 물러날 경우 다음 대표위원은 권 총장이 될 것이란 추측은 민정당 안팎의 상식처럼 돼있었던 만큼 권 대표 위원의 기용은 자연스런 일로 보인다.
다만 그것이 12대 선거가 끝난 후 있을 당 체제개편 때 실현될 것으로 보았던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볼 수 있다.
정 대표의 추진으로 집권체제의 큰 자리3개 (국회의장·국무총리·대표위원) 가운데 호남출신이 갖고 있던 두 자리가 한자리로 줄고 대신 영남출신이 2명이 됐다. 이런 지역분포를 생각하면 호남출신인 진의종 국무총리가 상대적으로 자리를 오래 지킬 가능성이 커졌다고도 볼 수 있다.
사무총장 후임에는 이종찬 총무가 옮겨 앉는 것이 당 안팎의 상식처럼 생각돼 왔으나 선거를 앞두고 임시국회·정기국회를 치러야하는 원내 사령탑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점이 고려된 듯하다. 따라서 이 총무의 역할은 종전과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한동 의원의 사무총장기용은 그가 총재비서실강욜 역임했고 검찰에 있을때 선거경험이 풍부할 뿐 아니라 최근 선거법협상의 실무대표로 권 대표 위원과 호흡이 맞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 사무총장은 창당 후 최초의 군 출신 아닌 사무총장인 셈이다. 그러나 권 총장의 격상과는 달리 이 총장의 기용은 돌발사로 인한 잠정적 조치의 인상이 있다.
권 총장의 대표위원 승진으로 민정당은 창당 후 처음으로 당 서열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체제에서 벗어났다.
지금까지 민정당은 관록 있는 구 정치인을 대표위원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제5공화국의 주도세력이 사무총장·원내총무에 앉아 주요 당무를 관장하는 2원 구조를 유지해왔다. 이를테면 대표위원은 당의 얼굴이었을 뿐 실제 역할은 사무총장· 원내총무가 당 총재의 지시를 직접 받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에 따라 지금껏 민정당은 권정달 사무총장-이진찬 총무, 권익현 사무총장-이 총무의 체제로 사실상 운영돼온 것이다.
그러나 권 총장의 격상으로 이런 2원 구조는 종지부를 찍고 실세화 됐다. 대표위원이 명실상부한 당의 책임자로 당무를 이끌게 됐다.
권 대표가 전두환 대통령과 육사동기이고 징계입문 후 착실한 성장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등장을 고차원의 정치적 성장으로 비약시키는 시각도 있으나 권 대표 자신은 『선거를 치를 과도체제의 관리인』을 자임하고 있고 그 이상 유추할 근거도 없다. 일부에서는 사무총장에 군 출신 아닌 사람이 앉은 것을 진일보로 해석하기도하나 권익현-이종찬조의 라인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는 것이 아직은 온당할 것 같다. 지금까지 사무총장이 전담했던 총재에 대한 당무보고를 이한동 신임 사무총장이 이어받을 것인지, 아니면 권 대표위원이 계속 갖고 갈 것인지 관심거리다. 총재와의 창구를 권 대표위원이 계속 맡을 경우 대표위원의 인사 천거권 등 권한은 한층 감화 될 것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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