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아트센터엔 성남 사람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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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0월 개관한 성남아트센터 전경. 앞쪽에 오페라하우스(左)와 앙상블 시어터가 보이고 그 뒤에 콘서트홀이 있다. 야외음악당과 2개의 전시장도 갖췄다.

내년 4월 25일부터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던 소프라노 조수미씨 주연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공연이 전면 백지화됐다. 성남아트센터가 조씨의 유럽 데뷔 20주년과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기획해온 오페라다. '마술피리'는 조씨가 20년째 밤의 여왕으로 출연해온 출세작이지만 국내에선 들려준 일이 없었다. 이번 무대에는 유럽 굴지의 오페라극장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 중인 한국 성악가들이 조씨와 함께 출연해 여섯 차례 공연할 예정이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6일과 9일 성남아트센터의 운영 주체인 성남문화재단(상임이사 이종덕)에 대한 감사와 예산심의 자리였다. 성남시의회 사회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앞으로 대관이 아닌 자체 제작 공연에는 반드시 성남시향과 성남시립합창단을 출연시켜야 한다고 못박았다. 지휘자.성악가도 국내 거주자만 쓰라고 주문했다. 압력을 받은 아트센터측은 결국'마술 피리'공연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시의원들은 11월 24~2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오페라 '파우스트'에 프라임 필하모닉과 부천시립합창단을 출연시킨 것도 문제삼았다. 외국에 사는 한국 성악가를 비행기표까지 사줘 가며 데려올 필요가 있느냐고 따졌다. 의원들은"시민 혈세로 지은 아트센터인 만큼 성남 시민에게는 입장료 할인 혜택을 따로 줘야 한다""무대에도 성남 사람을 세우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아트센터 측은 '파우스트'공연에 성남시향이 빠진 이유로 오페라 경험 부족을 들었다. 창단한 지 3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립합창단에 대해선 다른 공연에 출연하느라 파우스트를 연습할 일정이 빠듯했던 점을 설명했다.

시의회가 예산을 심의하고 제대로 집행되었는지 감시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스태프나 출연진 모두 성남 사람을 쓰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선거때의 표와 성남예총의 세력을 의식하고 '지역 이기주의'텃세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만 하다. 일각에서는 시의원들이 관행처럼 무료 초대권을 요구했다가 거절 당한 데대한 보복 차원으로 이번 감사를 혹독하게 했다는 말까지 있다. 지난 20년간 성남시립예술단의 정기 연주회는 무료였다. 하지만 성남아트센터는 처음부터'무료공연도 초대권도 없는 공연장'을 선언하고 출범했다.

성남아트센터의 한 관계자는 "아트센터는 지방 공연장 중 전주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라고 전제하고 "하드웨어(건립비)는 1600억원이나 들였지만 소프트웨어(공연)를 볼품있게 채우기는 어려울 듯 하다"고 우려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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