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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재불화가의 초상(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파리에서 10년 넘게 작품활동을 했고 지금도 파리북쪽 변두리에 아틀리에를 갖고 있는 서양화 중진화가 남관씨는 지난겨울 이런 말을 기자에게 했다. 『인생에 비하면 예술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요』
혼자서 (그때 남씨의 부인은 서울에 있었다) 달포 가까이 심한 몸살감기로 고생한 끝의 말이려니 넘기기엔 그의 표정과 음성이 매우 심각했다.
파리화단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그나마 몇 안 되는 한국작가중의 한사람이란 점에서도 그의 말은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남씨의 말뜻이야 어떠하든 파리의 한국작가들은 대부분 그와 닮은 고민을 안고 있다.
흔히 말하는 고민이라는게 어디 작가들에게만 있는 것이겠느냐 마는 이들의 작은 고민마저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예술가란 위치가 남보다 돋보이는 탓인지도 모른다.
현재 파리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재불작가」는 70명 정도다. 한창때는 1백명을 넘은 일도 있다.

<한-불 교류증진>
10년 혹은 20년 이상 장기체류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1년 정도 머물다 가는 이도 있다. 서울과 파리를 수시로 드나드는 양다리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본인들은 체류기간의 장단과 관계없이 모두 「재불작가」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2천명을 헤아리는 일본작가에 비해 수적으론 단연 열세에 있으나 이들은 역경 속에서나마 저마다의 몫을 다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불작가간의 상호교류를 증진하고 파리화단의 새로운 조류를 한국에 소개해온 것등은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의 공적이다. 굵직한 공모전에 입상해 한국작가의 역량을 과시한 이도 많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성공이 물론 쉬운 일이 아니어서 파리화단에서의 한국작가들의 자리는 아직 낮은 곳에 있다. 작은 규모나마 파리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발돋움한 작가가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국작가들이 서울시장에 줄곧 고개를 기웃거리게 되는 것은 바로 파리화단에서의 취약한 위치 때문이다.
서울의 고객이 작품을 사주지 않으면 작품을 소화시킬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작가들은 항상 서울에 끈을 이어놓고 있다. 그 끈은 서울의 화상과 연결된 것 일수도 있다. 친지나 동창관계에 이어진 것 일수도 있다.
재불작가들이 서울화단을 의식하고 서울고객들에게 작품을 판대서 탓할 것은 못된다. 그것은 오히려 이해할만한 일이다. 다만 파리화단에서 평가받으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재불작가」란 훈장을 달고 서울시장에 안주하려는 사람이 많은 게 탈이다.

<서울화상과 연결>
예컨대 이런 일은 어떤가. 어떤 작가는 파리에 들른 서울사람가운데 인연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라면 그를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다. 모처럼의 파리여행에서 이름으로만 들었던 「작가」의 초대까지 받은 서울손님들은 으레 감격하게 마련이고, 이 감격은 그 자리에서 그 작가의 그림을 사는데 여비를 아끼지 않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얼마나 흐뭇한 인정인가. 서울고객 상대의 작품판매전략으로 이같은 방법을 상습적으로 활용하는 이가 없지 않고 간혹 이런 작가들을 위해 활약하는 바람잡이까지 있고 보면 참담한 기분이 아닐 수 없게된다.
어떤 형태로든 서울시장을 잡지 못하는 작가들은 더욱 어려운 형편에서 작가수업과 작품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낮에는 관광안내원으로, 밤에는 남의 허드렛일을 도와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작가중 「거리의 화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자못 신기한 일이다.
파리의 관광코스에 들어가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이나 퐁피두센터앞 광장에는 수많은 화가들이 관광객상대의 그림을 그려 팔고 있다. 초상화가도 있고 풍경화가도 있다.
거의가 서양인 화가들이지만 일본인화가나 동남아출신 화가도 적지 않게 섞여있다. 그러나 한국인 작가 중에 이런데 나섰던 사람이 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한국작가들이 이들보다 형편이 나아서가 결코 아니다. 체면 때문이다.

<파벌간 반목심해>
그런 질 낮은 상품(작품)에 손을 대면 앞으로의 대성에 지장이 많다는 설명보다는 『아무개가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그림을 그려 팔고 있더라는 소문이 서울에 한번 알려지면 그날로 끝장』이라고 손을 내젓던 재불작가 K씨의 말이 차라리 솔직하다.
각자가 어려움 속에 있는 터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과 알력이, 그리고 시기가 적지 않다.
한 작가가 파리의 어떤 화랑초대로 개인전이라도 가지면 『얼마를 내고, 화랑을 빌었는데, 초대전은 무슨 초대전이냐』는 험담이 곧바로 나돌기 시작하고 누구 그림이 몇 장 팔렸다더라는 소식이 있으면 『사실은 한 장도 팔지 못했다더라』는 말이 뒤를 잇는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다른 인연에 따라 형성된 파벌간의 반목도 대단하다. 「반대파」작가의 개인전에는 좀처럼 가주는 일이 없고 그쪽 역시 초청장을 보낼 생각을 아예 않는다. 이같은 반목이 연출한 최대의 해프닝이 「재불한국작가회」의 양분사태였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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