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무성 기밀 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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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발표된 미국무성 기밀 문서는 우리에게 더없이 큰 충격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전란으로 허덕이는 동안 미국이 우리와는 아무 협의 없이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고 미국의 정책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는 쿠데타를 응모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30년의 시효가 지나 발표된 이들 문서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휴전 성립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아이젠하워」가 53년에 동북아에서의 전술핵 사용 검토를 두번이나 고려한 것으로 돼있다.
한번은 52년 초 교착 상태에 빠진 휴전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또 한번은 휴전 후인 53년12월 공산 측에 의한 전쟁 재개 가능성에 대비해 구체적인 검토가 행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전쟁 억지를 위한 경고가 아니라 군부에 의해 실제 작전 계획으로 검토된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일이다.
반 이승만 쿠데타 음모는 52년6월 부산에서의 정치 파동 때와 53년6월의 휴전 반대 때 등 두번이나 고려됐었다.
전자의 경우는 이승만의 재선을 위한 직선제 개헌을 저지키 위한 것으로 미국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순전한 내정 간섭에 해당된다.
후보의 경우는 이승만이 반공 포로를 석방하고 단독 북진을 주장하는 등 미국의 정책에 방해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무서운 음모들이 모두 실현되진 않았지만 그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자국의 세계 정책·세계 전략을 약소국에 강요하려는 제국주의적 대국 논리의 소산임은 분명하다.
일본에 대한 원자 폭격이래 미국의 가공 무기 사용 기준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어 왔다. 즉 너무나 쉽게 폭력을 남용한다는 것이다.
히로시마 (광도)와 나가사끼 (장기)에 과연 핵을 사용할만한 상황이 조성돼 있었는지는 납득되지 않는다. 월남에서 사용한 각종 화학 무기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무기 사용을 결정할 때 편협한 인종주의가 작용한다는 비난이 있다. 그들이 구미의 백인종에게도 그런 가공 무기를 사용했겠느냐, 왜 아시아의 황인종에게만 그런 무기를 사용하느냐 하는 규탄이다.
6·25 전란 때 미국이 원자 무기 사용을 검토했다는 문제에서도 그런 비판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 정부에 의한 외국 지도자 암살 문제도 오랜 비판의 대상이었다. 미국은 월남의 「고·딘·디엠」을 암살했고 장개석을 살해하려 했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도 미국의 개인으로 타도됐고, 쿠바의 「카스트로」도 여러번 암살 위기를 넘겼다.
그밖의 중남미 약소국의 여러 지도자들이 미국 행정부의 정책 수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암살 음모의 대상이 됐었다.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약소국 민족주의의 말살을 결과하는 강권주의적 방식이다.
우리는 금후의 미국 지도자들이 유럽의 권력 정치를 증오하여 도덕적 이상주의를 내걸고 미국을 건설한 파운딩 파더 (founding father·초기 미국의 건국 원훈)들의 존엄한 노선에서 교훈을 얻기에 좀더 겸허하고 성실할 것을 당부한다. 그것이 세계가 바라는 미국상이다.
도덕적 신뢰의 회복 없이는 미국은 세계의 지도국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이 없는 미국은 더 이상 오늘의 팩스 아메리카나 (Pax-Americana)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대를 정확히 기록하고 불리한 자료도 공개할 줄 아는 미국에서 배우는바 있어야 하겠다. 경험이란 귀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정확히 기록되고 전수될 때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며 역사의 정확성은 거기에서만 기대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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