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대 기자의 퇴근 후에] 거세한 성악가 카스트라토, 누가 또 부를 수 있겠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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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J컬쳐]

“라 샤 키오 피안 가(울게하소서), 라 두 라 소르테(내 슬픈 운명), 에 케 소 스피리 라 리베르타(한숨을 짓네 나 자유 위해).”

주인공 파리넬리가 헨델의 ‘울게하소서’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사랑하는 안젤로의 비밀이 발각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는 대목이었다. 노래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과 함께 파리넬리의 삶이 녹아 있었다. 극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바로 이 곳(노래)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이라 할 만 했다.

[사진 HJ컬쳐]

루이스 초이는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카스트라토(거세해 미성을 지닌 성악가)로 분했다. 카운터 테너인 그는 현재는 존재치 않는 카스트라토의 음성을 무대 위에서 들려줬다. 그는 고음역대에서 수준 높은 기교를 선보였다. 파리넬리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실력은 뛰어났다. 다른 작품들 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카스트라토 창법을 얼마나 잘 소화해 내느냐가 극의 성패를 가른다. 극의 짜임새, 무대 구성 보다도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노래 실력이 중요하단 의미다. 이에 뮤지컬 첫 도전인 루이스 초이는 합격점을 받을 만 했다.

다른 배우들의 실력도 극을 떠받치는 데 전혀 손색 없었다. 파리넬리의 형이자 작곡가 리카르도(이준혁 분)는 이 작품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동생을 사랑하는 소심한 형의 모습과 명성을 위해 광기에 빠지는 작곡가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선보인다. 앙상블이 부르는 노래들도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대형 액자 틀과 무대 좌우로 움직이는 나선형 계단으로 배경에 변화를 줬다. 무대가 웅장하진 않았으나 간결했다.

단 극의 결말에 약간의 허전함이 남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루이스 초이의 풍부한 성량과 고급스러운 기교를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강남통신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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