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지쳐 미국살이 11년 … 무대 돌아오니 떨리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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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조는 정규 앨범 출시도 앞두고 있다. 그는 “머리 파마를 했더니 폭탄을 맞은 것처럼 돼버렸다”며 쑥스러워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직도 무대 나가기 전엔 달달 떨어요.”

 가수 이광조(63)는 자신을 ‘백조’라고 했다.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긴 그에게 화려한 무대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무대에 설 때마다 노래에 몰입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쩌렁쩌렁 소리를 내지르다 보면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진다. 그렇게 열정을 쏟아부은 무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이광조는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게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직업을 잘못 택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1980년대 팝발라드계를 풍미했던 음유시인 이광조. 홍익대 미대에 재학중이던 76년 ‘나들이’로 데뷔했다. 이후 ‘오늘 같은 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 히트곡을 쏟아내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내년 데뷔 40주년을 앞둔 그가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다. 다음 달 8일 서울 라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단독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는 이광조를 24일 정동에서 만났다. 그는 “공연때문에 죽자고 연습하다가 심한 몸살로 2주 동안 고생했다”며 “긴장이 많이 된다. 공연하는 모습이 꿈에도 나올 정도”라고 했다.

 그는 2000년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목적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샌프란시스코였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싫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치이다 보니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무엇보다 노래에 지쳐있었다”고 했다.

’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 매일 해변에 나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고, 지칠 때까지 걸었다. 돈이 떨어지면 식당에서 일했고, 집 수리공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그림도 다시 시작했다. 박물관과 전시회를 찾아다녔고 일상의 느낌과 순간순간을 캔버스에 옮겼다.

 그는 “미국에선 음악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간간이 국내 방송에 일이 있을 때만 들어와 얼굴을 비춰 내가 한국을 떠나 있었다는 것을 잘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11년의 시간을 자유인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노래도, 가족도 그리워졌다고 했다. 이씨는 “돌이켜보면 나는 그렇게 자랑스럽지 않은 가수였다”며 “다른 가수와 다르게 긴 시간을 숨어 있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이광조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유를 꿈꿨다. 그래서 다른 가수처럼 소속사도 매니저도 두지 않았다. 그는 “가수는 비정규직이라 대출도 안 된다”며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돈은 못 벌지만 내 직업을 이젠 명예롭게 생각한다. 무대에 섰을 때만큼은 왕이 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그는 이제 가수 인생의 대미를 준비한다. 이씨는 “나이가 들수록 초라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라며 “목소리가 안 나와 그 곡의 느낌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봐 매일 연습에 기댄다”고 했다. “나만의 밴드와 함께 화려하지는 않아도 슬픔이 있고 담담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소극장에서 내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과 호흡하는 게 가수로서 마지막 꿈입니다.”

글=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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