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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야 할 착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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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2000만 명 이상의 아사자를 낸 1950년대 말 중국의 대약진 운동은 마오쩌둥(毛澤東)의 허황된 현실 인식과 목표 설정에서 비롯됐다. 그는 생산수단의 집단화가 완성되고 공산주의 단계로 진입함으로써 중국의 생산능력은 비약적으로 증가됐다고 봤다. 그래서 내세운 게 당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영국을 15년 안에 추월한다는 목표였다. 그러자니 당장 철강이 부족했다. 그래서 동네마다 고로를 만들고 공무원들이 집집마다 들이닥쳐 챙겨 온 솥, 냄비와 밥그릇을 몽땅 녹여 쇳덩어리를 뽑아냈다. 통계숫자는 올라갔지만 제대로 된 철강이 나올 리 만무했다. 개인 취사가 금지된 주민들은 마을이나 직장 단위로 설치된 공동식당에서 단체로 식사했다. 먹는 것도 만인이 평등하게 똑같은 것을 먹는 게 공산주의였다. 하지만 마오의 생각과 달리 집단생산체제(인민공사)로의 전환은 생산량을 현저히 떨어뜨렸고 자연재해가 겹치자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2015년 중국은 20년 안에 독일과 일본을 추월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경제 규모로는 추월한 지 오래지만 아직은 뒤처진 기술력에서 두 나라를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주창한 ‘제조 2025’ 계획의 핵심은 2025년까지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 변신하고 다시 10년 뒤에는 독일과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싸구려 모방품을 양산하는 나라란 선입관을 갖고 중국을 보면 이 목표는 마오의 영국 추월만큼이나 허황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나는 최근 방문한 선전(深?)에서 이런 생각을 접었다. 통신업체 중싱(中興·ZTE) 본사에 가니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한 전시 패널이 길다란 복도의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이 회사 연구진이 출원한 특허 목록을 새긴 것이다. 중싱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하는 국제특허출원 랭킹에서 2011년 이후 해마다 1, 2위를 다툰다. 한국 기업의 이름은 10위권 밖에서나 볼 수 있다. 반도체 단순조립으로 시작한 이 회사가 창사 30년 만에 통신솔루션 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선 비결은 이 복도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통신장비 분야에서 중싱과 쌍벽을 이루는 화웨이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 회사는 2세대 통신(2G) 단계에선 선두기업의 추종자였지만 3G 단계에선 경쟁자가 됐고, 4G에선 세계시장의 리더, 5G에서는 표준창출자가 되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선전에 본사를 둔 전기차 업체 BYD 덕분에 선전은 전기자동차 택시가 상업 운행을 하는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됐다. BYD는 올해 안에 ‘후발국가’인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종류의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우리가 중국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만의 착각일 수 있다는 걸 이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