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역사의 책임 회피하는 아베와 에르도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프랑스 총리. 이들의 공통분모는 아르메니아다. 국적은 다르지만 모두 아르메니아계다. 많든 적든 몸에 아르메니아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 테니스 선수였던 앤드리 애거시, 러시아의 체스 영웅인 가리 카스파로프, 프랑스의 샹송 가수였던 샤를 아즈나부르와 실비 바르탕의 뿌리도 아르메니아다.

 이들의 고향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캅카스 산악지대다. 예수의 제자였던 타대오와 바르톨로메오의 순교로 초기에 기독교가 전파된 곳이다. 전 세계 아르메니아인은 약 1000만 명.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아르메니아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보다 러시아·미국·프랑스 등 70여 개국에 흩어져 사는 아르메니아인이 훨씬 많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투르크(지금의 터키)에서 발생한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후유증이다.

 1915~23년 오스만 정부가 자행한 강제이송과 집단학살 및 학대로 최대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 각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의 대부분이 당시 터키 밖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의 후손이다. 날벼락 같은 1915년 대학살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처는 낫지 않고 있다. 터키 정부가 대학살을 부정하며 사과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이 안타깝게 희생된 것은 맞지만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자행한 ‘홀로코스트(Holocaust)’와 같은 집단적 인종학살은 아니었다는 게 터키 정부의 주장이다. 특정 인종이나 종족, 종교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저질러진 ‘제노사이드(genocide)’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컬래터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 즉 부수적 피해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전시 상황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적국인 러시아와 내통하는 현실을 오스만 정부로서는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란 변명도 잊지 않고 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홀로코스트의 선례가 됐다는 게 서구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강제이송, 집단수용소, 집단살육, 인종청소, 재산몰수, 고문, 기아 등 홀로코스트에서 나타난 반(反)인륜적 범죄의 특징이 아르메니아 대학살에서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숱한 증거와 기록, 증언에도 불구하고 터키 정부가 대학살을 부정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꼴이라고 아르메니아인들은 한탄하고 있다.

 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은 아르메니아의 비극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유럽 의회도 대학살을 인정하라고 터키 정부에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0년 전 터키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를 규탄하면서도 제노사이드란 용어는 피했다. 나토 회원국이며 동맹국인 터키의 입장을 고려한 고육지계(苦肉之計)일 것이다. 터키 안에서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제노사이드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식인들을 사이에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구구한 변명 늘어놓지 말고 깨끗이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후세에게 가르쳐 역사의 교훈을 삼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대학살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기자는 입장이다. 침략에 대한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이나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는 추가 논쟁이 필요 없는 문제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정리가 끝난 사안이다. 에르도안과 아베가 역사학자를 거론하는 것은 그들 뒤에 숨어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한 행동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부정하고,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과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에르도안과 아베의 뒤에는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는 수구적이고 반동적인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툭하면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는 반(反)민주적인 극우세력이다. 내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아베의 입에서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말이 안 나온다면 미국은 조심하는 게 좋다. 미국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일본이 당장은 고마울지 몰라도 언젠가는 미국의 뒤통수를 치는 부메랑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악(惡)을 감추고 부정하는 것은 상처를 붕대로 감싸지 않고 계속 피를 흘리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의 말에 아베와 에르도안은 귀 기울여야 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