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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탐사보도, 200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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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 탐사보도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시작된다. 관료제와 자본주의가 뿌리내리며 정치인.공무원.기업인의 파워는 커졌지만 이를 견제할 힘은 미처 성장하지 못한 시기였다. 이때 권력의 이면을 추적하는 경쟁이 불붙는다. 사생활을 선정적으로 폭로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에 흙탕물을 일으키고 다니는 추문 추적자"라고 공격했다. 주춤하던 탐사보도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 제2기를 맞는다. 미군의 양민학살 폭로와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다룬 탐사보도가 잇따르면서 '정의의 저널리즘'으로 자리 잡는다, 지나치게 공격적이며 편협하다는 평가도 함께 받으면서. 80년대 중반 제3기가 시작된다. 사회가 전문화.정보화하면서 변신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3기의 미국 탐사보도는 이전 세대보다 분석적이 된다. 통계 기법과 사회조사방법론, 네트워크 분석 등을 활용하기 시작한다. 객관성.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분노나 정의를 거칠게 폭발하거나 언론은 옳고 취재 대상은 나쁘다는 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소재도 다양해진다. 권력에 대항하거나 그 뒤를 캘 뿐만 아니라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빈곤.환경.의료.과학 문제를 이슈화한다. 이 시기 들어 보도 윤리에 대한 고민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민감한 사안을 파고드는 탐사보도 과정은 때에 따라 100% 윤리적일 수 없다. 미국에선 함정취재, 몰래 카메라.녹음기, 기습 인터뷰, 익명 처리를 둘러싼 논란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례가 쌓이면서 세세한 보도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기자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취재한다고 하자. '위장이 아니면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중대한 공익적 사안을 파고드는 경우'를 빼곤 함정 취재를 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다.

2005년은 국내 탐사보도가 3기에 진입한 시기다. 신문.방송에서 분석적이고 다양하면서 힘있는 보도가 많이 나왔다. 적지 않은 보도 윤리 문제도 불거졌다. MBC PD수첩의 황우석 박사 검증 사례가 대표적이다. 취재 과정에 회유와 몰래카메라, 기습 인터뷰 등을 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후속 보도에선 윤리를 어긴 사실을 공표하고 비교적 차분하고 분석적으로 접근했다. PD수첩의 첫 보도가 1, 2기에 속한다면 후속 보도는 3기에 가깝다.

일간지와 방송에서 탐사보도는 주류가 아니다. 게릴라부대지, 보병이 아닌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스트레이트와 박스, 일반 기획기사가 근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이 믿음직한 감시자이자 탁월한 분석가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탐사보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3기에 막 접어든 국내 탐사보도는 장마철에 징검다리를 걷는 상황이다. 비윤리적이고 냉혹하다는 평가에 빠지면 불어난 물에 떠내려갈 수 있다. 이는 언론 종사자나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될 게 없다. 2006년을 맞이하며 좀 더 강하면서 윤리적이고 따뜻하면서도 분석적인 탐사보도를 기대하고, 또 스스로 다짐한다.

이규연 탐사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