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박물관서 알링턴 묘지까지 … 아베 '침략사 덮기'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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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 7박8일간의 방미 일정을 시작했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27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자료가 전시돼 있는 워싱턴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방문한다”고 26일 보도했다. 아베는 지난 1월 중동 순방 때도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았다. 지지통신은 “인권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우려를 털어내려는 생각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만을 언급하며 한국과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진심 어린 사죄를 거부하는 아베 총리가 일본의 침략사를 덮으려는 고도의 술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한국과 유대계를 이간질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에서 막강한 정치력을 가진 유대계의 환심을 사면서 ‘역사 수정주의자’란 꼬리표를 떼고 ‘평화주의자’란 이미지를 심으려는 속셈이다.

 아베는 27일 알링턴 국립묘지도 참배한다. 태평양전쟁 상대국인 미국의 국립묘지에서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세계 평화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질 계획이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한 세계의 비판 여론을 희석시키려는 꼼수가 숨어있다. 그는 2013년 5월 “야스쿠니 신사와 알링턴 국립묘지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그는 태평양 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는 것은 일본 지도자로서는 당연하며, 다른 국가 지도자들도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었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여론 잡기’에도 적극 나선다. 26일 보스턴에선 존 F 케네디 도서관을 찾는다. 2013년 4월에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 현장도 찾아 헌화한다.

 28일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29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다. 미국 내 대표적 일본 홍보기관인 사사카와(笹川) 재단에서 기조강연도 예정돼 있다. 30일엔 미 서부로 이동, 샌프란시스코에서 페이스북 등 실리콘 밸리 기업을 시찰하고 다음날엔 1200명의 일본계 미국인이 모이는 리셉션에 참석, 미·일 우호를 과시한 뒤 귀국한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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