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강자, 글로벌 시장서 살아남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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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01면

“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는가(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4년 전 이런 내용의 기고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실었다. 기고문에서 그는 갈수록 더 많은 산업 영역이 소프트웨어로 인해 붕괴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재편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집중기획] 소프트웨어가 미래다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산업 창조
예견은 적중했다. 소프트웨어가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을 통해 신산업을 창조하며 세상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산업이다. 디터 체체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은 “이제 자동차는 가솔린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달린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자동차 구매자들은 자동차를 고를 때 부품보다 그 부품이 어떤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자동차 외관은 변함이 없지만 그 속에 담긴 기능은 차선이탈 경고, 정속 주행, 자동 제동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모두 소프트웨어 기반의 서비스다. 자동차를 ‘기계장치’보다 ‘전자장치’로 부르는 이유다.

 나아가 구글이 개발한 자율주행 자동차는 레이저와 카메라, 첨단 센서로 수집한 정보를 컴퓨터로 처리하며 운전자 없이 112만㎞를 무사고로 달렸다. 진정한 ‘자동차(自動車)’를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금융업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역시 소프트웨어다. 기술(Technology)과 금융(Financial)이 결합한 핀테크(FinTech)는 은행의 존재를 위협한다. 인터넷과 모바일 뱅킹, 가맹점 포인트를 결제 수단으로 쓰는 스마트폰 멤버십도 핀테크에 속한다. 최근에는 정보 보안과 송금·결제 능력을 두루 갖춘 IT기업으로 핀테크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아마존 ‘원클릭페이(OneClickPay)’, 이베이 ‘페이팔(PayPal)’, 알리바바 ‘알리페이(AliPay)’, 구글 ‘체크아웃(Checkout)’, 애플 ‘애플페이(Applepay)’ 등 다양하다. IT기업들은 자사 서비스를 이용할 때 기존 금융업이 제공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하며 안전한 결제시스템을 제공해 이용자를 끌어모은다.

 개방형 플랫폼과 핀테크를 융합하면서 그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김진형(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 KAIST 전산학부 명예교수는 “‘소프트웨어 혁명’으로 사회·경제의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글로벌 기업의 판도도 요동치고 있다. 시가총액 세계 100대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14%에 불과했으나 90년 17%, 2010년 34%로 20년 새 2배로까지 뛰었다.

 하드웨어 상품은 물량이 늘어날수록 제조원가는 증가하고 기술은 평준화한다. 반면에 소프트웨어 상품은 물량에 관계없이 원가가 비교적 일정하다. 우수한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확보하면 이를 업그레이드하며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세계 100대 기업 중 SW 기업 비중 34%
애플은 소프트웨어 파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기업으로 꼽힌다. 애플은 본래 하드웨어에 국한된 기업이었다. 2000년만 해도 시가총액 순위가 10위권 밖이었다. 그러다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기기에 사용하는 플랫폼과 콘텐트를 제공할 소프트웨어(아이튠즈·앱스토어)를 개발해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입히기 시작했다. 이제 애플은 시가총액 7356억 달러(약 800조원)로 세계 부동의 1위 기업이다.

 시가총액 2위인 구글 역시 인터넷 검색도구로 출발했지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서 영역을 확대한 케이스다. 인터넷브라우저 ‘크롬’을 세계 점유율 1위로 올렸고, 스마트폰의 운영체계인 안드로이드를 만들면서 주가를 띄웠다.

혁신 뒤처진 하드웨어 강자들 고전
반대로 ‘소프트웨어 혁신’에 뒤처진 기업은 초라하게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은 필름 카메라의 최강자인 코닥을 무너뜨렸다.

 세계 1위 휴대전화 업체였던 노키아, 워크맨으로 음악시장을 이끌던 소니는 각각 스마트폰과 MP3 등 소프트웨어 중심의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기존에 ‘하드웨어의 강자’들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체제를 전환하는 이유다.

 퍼스널 컴퓨터(PC) 시대의 강자였던 IBM은 90년대 중반 이후 PC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이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부문에 기업 역량을 집중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최근 실리콘밸리에 1200여 명의 연구진이 참여한 R&D센터를 열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융합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각국 정부 역시 소프트웨어를 미래 국가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보고 교육과 기업 육성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산업과 경제를 뛰어넘는 소프트웨어 중심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기사 3, 4, 5면

류장훈·박정렬 기자 ryu.jang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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