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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생각지도

또 다른 이완구를 막는 델포이 신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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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써먹어 유명해졌지만 원래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진 경구였다. 신전에 들어서는 인간에게 “백 년도 못 살 주제에 불멸의 신탁(神託)을 의심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제발 무식함 좀 깨닫고 배우고 익혀서 사람답게 살라”는 의미로 설파했다.

 아폴론 신전은 무너졌고 현판도 사라졌다. 하지만 경구는 수천 년 세월을 견뎌 오늘날에도 활어처럼 팔딱팔딱 뛴다. 그만큼 저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경구로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다.

 사실 저 자신을 모르는 데서 모든 불행은 싹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렇다. 제 깜냥이 부장인데 임원 되길 바라니 안타깝고 속상하다. 임원이 못 되면 그 사람이 불행하고, 임원이 되면 회사가 불행해진다. 나 닮은 아들 딸이 어찌 똑똑하지 않겠나 싶지만 남 탓하는 건 아들 딸의 친구 부모도 마찬가지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만들어 보려다 자칫 범법자가 되고 아이는 골병이 든다.

 개인만 불행하고 말면 혀를 차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면 국민이 불행해지고 나라가 비참해진다. 한동안 나라를 달궜던 총리 사퇴 파동이 다른 게 아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해서 빚어진 참사인 거다. 재상 감이 아닌 걸 모든 사람이 알고 그렇게 아니라고 했건만, 혼자만 몰라서 고집하다 온갖 지저분한 진실만 까발려지고 만신창이 최단명 총리로 마감하게 생긴 것이다. 자기만 불행해진 게 아니라 온 국민의 진을 빼고 갈 길 바쁜 국가의 발목을 잡았다.

 자신의 함유량을 잘 살폈더라면 그는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훌륭한 도지사로 남았을 터다.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공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분에 넘치는 걸 탐하다 스스로 유효기간을 앞당기고 만 것이다. 이 땅에 그의 재주가 필요한 곳이 분명 있을진대 잃고 말았으니 나라로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크기는 공방의 도자기처럼 나면서 정해지는 게 아니다. 군자는 그릇이 되지 않는다지만 군자가 아니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간장 종지도 대접만큼은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종지가 대접되기가 쉬울 리 있나. 땀을 쏟아 부어야 하고 뼈를 깎아 넣어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팔리는 거라면 한 가지 재료가 더 추가된다. 도덕성이다. 일반 상품과 명품의 품질이 다르듯, 도지사와 총리는 요구되는 도덕성의 품질이 다르다.

 이완구 도지사가 총리를 꿈꿨다면 그때부터라도 좀 더 삼가는 게 많았어야 했다는 말이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명품 몸매를 가질 순 없는 노릇이다.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탈이 나는 이유가 다 이것 때문 아닌가. 부동산 투기 하고, 위장전입 하고, 논문 베끼고, 애들 군대 안 보낸 게 사적 영역에서는 무용담이 될지 몰라도 공적 영역의 선을 넘는 순간 원숭이의 빨간 엉덩이가 되는 것이다.

 하물며 우리의 총리는 공복으로 사회 출발을 한 사람이다. 민간에서 넘어온 사람과는 다를 거라 기대됐었고 실제 달랐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알았다면 총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았어야 했던 거다.

 실패에서 배우는 순간 실패는 성공의 모친 자격을 갖는다. 정말 배웠으면 좋겠다. 장관을, 총리를, 그리고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미 늦은 것은 아닌지 자신을 냉엄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의 다른 쪽에는 또 하나의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메덴 아간” 즉 “지나치지 말라”는 말이다. 꿈도 욕심도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공직을 꿈꾸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로 이것 말고 더 필요한 게 있을까 싶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지나치지 말라.”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