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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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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제 내가 하려는 일은

 지금껏 해온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훌륭한 행동이요,

 이제 내가 가려는 길은

 지금껏 가본 그 어떤 길보다도

 더 없이 평화로운 휴식의 길이다.”

- 찰스 디킨스(1812~1870)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시대를 초월한 낭만적 순애보
희생하는 자가 진정한 영웅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문장이다. 혁명의 복판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변호사 시드니 칼튼의 마지막 말이다. 방탕한 삶을 살아온 칼튼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녀의 남편 대신 자진해서 단두대에 오른다. 이 문장으로 끝나는 책장을 덮으며 그 영웅적인 면모, 희생정신, 낭만적 분위기에 매료됐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참한 시대상을 그렸지만 다른 어떤 음악이나 문학에도 빠지지 않는 낭만성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엔딩이자 대사다. 요즘 들어 이 구절이 자주 떠오르는데, 아마도 각자 삶이 바빠서 남을 돌아볼 시간이 없는 현대에서 더욱 이런 희생정신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최근 내가 집중하고 있는 실내악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실내악은 솔로 악기들이 상대를 누르기보다 서로 양보하며 팀워크를 맞춰가는 음악이다. 평소 자아가 강한 연주자들도 실내악에서는 희생하고 배려하며 타협해야 한다. 동의할 수 없어도 따라가야 할 때도 있다. 매사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신을 담은 음악이란 생각도 든다.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