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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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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청계천 복원, 서울시청 앞 광장 공사, 서울 숲 조성…. 최근 들어 서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복원하는 등 친환경 공사가 늘어나면서 관련 업체들이 각광받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일들을 소규모 조경업체가 했다. 요즘에는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친환경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코스닥 업체까지 등장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태계 복원 전문 기업 두 곳을 탐방했다.

장판처럼 까는 '슈퍼롤 잔디' 개발
시청광장 시공 … 골프장 100여 곳도

엘그린
'잔디를 밟지 마시오.' 엘그린의 이성호 사장이 제일 이해 못하는 말이다. 이 사장은 잔디란 밟고 다니기 위해 깔아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서울시청 앞 광장에 깔린 잔디는 벤처기업인 ㈜엘그린의 '슈퍼롤 잔디'다. 4일 밤 서울 시내에 함박눈이 내리면서 시청 앞 잔디광장은 하얀 눈과 초록빛 잔디가 대조를 이뤄 이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광장 잔디는 겨울에도 파릇파릇함을 유지하는 '한지(寒地)형 잔디'다. 흔히들 '양잔디'라고 부른다.

엘그린의 잔디는 그냥 양잔디가 아니다. 재배지에 특수필름을 깔고 그 위에 거름흙을 뿌리고 잔디씨를 뿌리는 방식으로 키운다. 잔디 뿌리가 필름 위에서 서로 엉키면서 생육이 빨라진다. 바로 이 기술이 엘그린이 특허(97년)를 받고 벤처기업 인증(2001년)을 받은 기술이다.

출하할 때는 가로 65㎝, 세로 154㎝로 자른 뒤 마치 장판처럼 말아서 내보낸다. 잔디를 옮겨 심을 지역에는 장판처럼 말린 것을 다시 펴서 깔면 된다. 이 때문에 잔디를 이식한 바로 다음날 몇 년간 가꾼 것처럼 푸른 잔디를 볼 수 있는 소위 '롤(roll)형 인스턴트 잔디'다.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은 거의 매주말 대형 행사가 열린다. 수많은 사람이 잔디를 밟기 때문에 잔디가 제대로 자라기 어려운 조건이다. 서울시가 엘그린의 롤형 인스턴트 잔디를 선택한 이유다. 잔디가 죽으면 그 부분을 떼어내고 새 롤잔디를 깔면 된다. 엘그린의 잔디는 시공기간이 촉박하거나 유동인구가 많아 잔디 손상이 심한 지역에 적합하다.

엘그린은 서울시청 앞 광장 외에도 상암구장 등 전국 월드컵 구장 10군데 중 6곳에 '슈퍼롤 잔디'를 시공했다. 시내 곳곳의 교차로 사이에 있는 '교통섬'의 잔디도 엘그린이 길러낸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시장은 골프장이다. 엘그린은 국내 100여 군데의 골프장에 롤잔디를 공급했다.

지난해 매출은 40억원가량. 1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국내 잔디시장에서 시장점유율 20%를 차지하는 것이 엘그린의 목표다.

'식생 블록'으로 벤처기업 인증
지난달 업계 첫 코스닥 상장

자연과 환경
자연과 환경의 김인회 사장이 서울 가락동 본사에서 풀이 자라난 콘크리트 벽돌샘플을 들고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자연과 환경은 2000년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생태복원 전문 기업이다.

이 회사는 9월까지 1년 동안 청계천 복원 공사에 참여했다. 청계천 마장2교에서 중랑천과 만나는 부분까지 2.6㎞의 강기슭 복원 공사를 담당했다. 시멘트 블록으로 덮여있던 강둑을 걷어내고 자연형 하천을 만드는 일이다.

여기에 이 회사의 벤처 기술이 동원됐다. '다공성(多空性) 식생(植生) 블록'을 깔아 그 위에 잔디와 토종 야생화 씨를 뿌리는 공법을 썼다. 다공성 식생 블록이란 블록 사이에 구멍을 많이 만들어 식물이 뿌리내리기 쉽게 만든 것이다.

식물이 자라면 마치 천연 하천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띠면서도 홍수 등에 강한 튼튼한 강둑으로 변한다. '친환경'과 '치수(治水)' 두 가지를 동시에 잡는 공법인 셈이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청계천을 비롯해 중랑천 등 전국 550여 곳의 하천을 친환경 생태하천으로 바꿔놨다.

이 회사는 1999년 창립됐다. 지난해 매출은 136억원. 이 같은 실적과 기술 덕분에 청계천 공사가 끝난 직후인 지난달 18일 코스닥에 상장됐다. 생태복원 전문 기업으로서는 처음이다.

김인회(51) 사장은 "서울은 물론 지방자치단체마다 친환경 생태복원 공사 바람이 뜨겁다"며 "관련 시장 규모는 연 3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 사장은 97년까지 산업은행과 산업증권에서 근무했다. 그는 97년 말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콘크리트 블록 기술이 있는 지인과 힘을 합쳐 회사를 세웠다. 45살의 늦깎이 창업이었다. 그는 "주위에선 창업하기에 늦은 나이라며 말렸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 성공할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joonho@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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