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정치인들에게선 후원금을 받지 않았고 받은 적이 있더라도 돌려줬을 것이다.” 지난 2월 이완구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2014년 6·4 지방선거 출마자들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한 해명이었다.
그러나 6·4 지방선거 공천을 앞둔 2013년 말~2014년 이 총리는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앞둔 4명에게서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19일 이 총리의 고액 후원자(300만원 초과) 명단을 확인한 결과 당시 지역구(부여-청양) 의원이던 이 총리는 청양군수 예비후보로 등록한 복철규(500만원)·신정용(1000만원)·유병운(500만원)·이희경(1000만원)씨 등에게서 후원금을 받았다.
새누리당에 따르면 당시 청양군수 선거전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총리에게 후원금을 낸 4명이 모두 나섰고 김의환 후보 등 2명이 가세했다. 결국 6명 중 컷오프를 통해 복철규·김의환 후보로 압축한 뒤 경선을 치러 김 후보가 공천됐다. 그러나 김 후보는 공천을 받은 직후 선거법 위반 혐의로 후보직을 박탈당했다. 여당은 결국 ‘전략공천’(경선 없이 중앙당 결정)을 통해 복 후보를 공천했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공천 다음날 바로 고발이 들어와 공천 결정이 번복됐다”며 “복씨도 똑같이 고발당했는데 공천이 돼 당시 이 총리에게 직접 항의도 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 측은 “당시 이 총리는 ‘중앙당에서 결정한 일로 나는 관여한 바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했다.
청양의 정치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19일 “복씨는 이 총리의 외가에서 200~300m 떨어진 곳에 사는 이 총리 외가 쪽 친척”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군수선거가 진행될 때 ‘복씨가 이 총리를 업어서 키웠다’는 말도 돌았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의 모친은 ‘면천 복씨(卜氏)’다. 이 총리의 가족은 6·25 때 청양의 복씨 집성촌으로 피란을 왔다.
이 총리의 당시 후원금 내역엔 복씨 외에 3명의 또 다른 복씨 성을 가진 후원자도 나온다. 이들은 각각 법정 후원금 한도인 500만원씩을 후원했다. 지역 인사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들은 모두 복씨 선거캠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사람이었다 . 익명을 원한 한 새누리당 인사는 “이 총리에게 500만원을 낸 복씨 성의 후원자 중에는 택시 운전기사도 있는데 (차명 후원금이 아니면) 500만원을 후원했겠느냐”고 되물었다. 복씨는 본지 통화에서 “이 총리와 친·인척 관계로 어렸을 때 같이 냇가에서 멱도 감았던 사이지만 (공천에) 덕을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를 도왔던 다른 복씨들이 이 총리를 후원하겠다고 해서 오히려 ‘(후원금) 영수증을 잘 챙겨놓으라’고 했다”며 “후원금 내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했다. 복씨는 공천을 받긴 했지만 6·4 지방선거 땐 낙선했고 옥중(獄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석화 후보가 당선됐다.
이 총리는 청양군수 예비후보자 4명 외에도 유병기(1000만원)·강용일(500만원)·이삼례(500만원)·이강희(500만원)씨 등 4명에게 지방선거 시점에 후원금을 받았다. 이 중 강용일·이삼례씨가 공천을 받고 각각 충남도의원과 부여군의원에 당선됐다.
강태화·김경희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