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외숙 한의사의 소중 동의보감 <21> 수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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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인가 했더니, 다시 꽃샘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봄에 잘 적응하고 있나요? 아마도 춘곤증 때문에 점심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질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봄나물 먹고 맨손체조도 하며 서서히 봄에 적응해 가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번 칼럼에선 춘곤증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잠’입니다. 낮에 자는 잠이 아니라, 밤에 자는 잠입니다. 밤이 되면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잠을 잡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죠. 호기심이 많은 친구라면 한번쯤은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왜 낮이 아니라 밤에 잠을 자는 걸까요.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 출현한 것으로 알려진 20만~10만 년 전부터 농경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긴 세월 동안 날이 밝는 아침에 일어나고 밤이 돼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는 가장 큰 이유는 어두워지면 활동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요. 이렇게 수만 년 동안 이어 온 생활방식이 자율신경계 리듬으로 유전자에 새겨져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잠이 깨는 패턴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하루의 리듬을 ‘생체시계’라고도 합니다. 생리나 대사는 물론이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처럼 하루를 주기로 반복하는 리듬을 말하죠. 최근에는 이 생체시계가 25시간 주기를 가지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하루 24시간에서 1시간이 더해진 25시간입니다. 그래서 수면패턴이 습관화되지 않은 아이들을 그냥 두면 매일 1시간씩 수면시간이 늦어진다고 합니다. 잘 시간을 정하고 수면환경을 만드는 일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자율신경계의 생체시계에 의한 입면(入眠·수면 상태에 들어감) 과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날이 어두워져 눈에서 감지되는 빛 자극이 줄어들면 수면 유도물질인 멜라토닌이 점차 늘어나면서 졸음이 오기 시작합니다. 다시 날이 밝아져서 빛 자극이 서서히 늘어나면 멜라토닌의 분비가 점차 줄고 서서히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밤이 깊어도 일찍 자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 안에서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등 시간을 보내고 늦게 잠드는 겁니다.

직업의 특성상 아예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나 자율신경계는 수면과 식사, 배설, 활동리듬 등이 각자 독립적으로 조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한 가지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때 다른 부분도 톱니바퀴가 맞춰지듯 순조로울 수 있는 겁니다.

“밤낮이 바뀌더라도 하루 7시간 수면만 맞춰주면 괜찮겠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그렇게 조절되지 않습니다. 생체시계에 입력된 것과 다르게 수면패턴에 변화가 오면 잠들기 힘들게 되거나 잠을 이어서 자지 못하게 될 수도 있죠. 또 밤낮이 바뀐 생활을 오래 하면 몸의 자율신경계 리듬이 흐트러지면서 암을 비롯한 각종 만성질병의 발생률이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10대 시절에는 종종 밤 늦게까지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오후 10시 전엔 잠자리에 들고 아침 7시쯤 일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습관화됐다면, 고치는데 약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턱대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고 해서 잠이 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낮 동안에는 햇볕을 받으며 활동하는 게 좋습니다. 그럼 세로토닌 분비가 활발해지죠. 저녁에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이 충분히 잘 분비되도록 도와주는 호르몬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그리고 ‘낮에는 햇빛을 많이 쬐기’. 이 두 가지를 병행해 1~2주 정도만 노력해 보세요.

구리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e system 저절로 작동되는 신경계를 말합니다. 저절로 작동된다는 말은 곧, 우리가 조절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리듬을 가져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뭔가를 먹어서 씹어 삼킬 때 우리는 ‘소화를 시켜서 영양분은 흡수하고 찌꺼기는 배출해야지’라고 따로 생각하지 않죠. 음식물을 소화해 양분은 흡수하고, 찌꺼기는 대소변으로 배출하고, 밤이 되면 졸음이 와서 잠을 자고, 아침이면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도록 하는 것 모두 자율신경계의 조절을 통해 저절로 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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