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찍어내는 ‘바이오프린팅’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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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IT 스타트업 축제 SXSW에서 이명 치료 응용프로그램, 불안감 해소 게임 등 디지털 건강기술 인기 끌어

(왼쪽부터) 바이오보츠의 3D 바이오프린터는 생체조직을 출력할 수 있다. 이명을 치료하는 티니트랙스와 소노르메드의 요에르그 란트 대표.

미국장기이식재단에 따르면 미국인 12만3000명 이상이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 또 장기를 기증 받지 못해 사망하는 미국인이 매일 평균 21명이다.

만약 그들이 컴퓨터를 작동시켜 ‘프린트’ 버튼을 클릭 한다면?

물론 아직 그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이오보츠 같은 회사 덕분에 기술이 신속히 그 방향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스타트업인 바이오보츠는 인간의 생체 조직을 출력할 수 있는 3D 바이오프린터를 만든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지난 3월 13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 세계 최대 IT 스타트업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대회에 출품된 건강관련 기술 중 하나다.

바이오보츠의 공동창업자 소하이브 하시미(24)는 “다른 사람의 장기를 기증 받으려고 기다리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이식을 받는다고 해도 거부반응 이라는 문제가 있다. 신체가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세포를 가진 장기를 제공 받을 수 있다면 그런 문제는 말끔히 해결된다.”

바이오보츠의 다른 공동창업자 대니 캐브레라(22)는 완전한 장기를 3D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으려면 앞으로 몇 십 년은 더 걸린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도 바이오프린팅(bioprinting,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재건 수술에 활용할 수 있는 세포 조직 등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용적 용도가 다양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바이오보츠는 12인치 큐브 프린팅 기기를 제작한다. 이미 학계 연구자들이 활용하고 있다. 캐브레라는 3D 프린터로 출력된 세포조직이 신약 개발에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소재와 물감으로 축소판 장기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약 효과 실험에서 동물 대신 그 모델을 사용할 수 있다. 이제 실제 사람이 아닌 3D 인체 조직에 약을 테스트할 수 있다.”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리지만 여기는 희한한 아이디어가 잉태돼 세상을 바꿔나가는 SXSW 행사장 아닌가?

올해 SXSW 대회에선 다양한 건강관련 기술 중 활력징후(맥박·호흡·체온·혈압 등)를 측정하는 모바일 앱부터 의사와 환자를 연결해주는 영상회의 네트워크까지 디지털 건강 부문이 단연 돋보였다.

크리스 밸런타인 SXSW 행사 프로듀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문”이라며 “여기에 참석한 스타트업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특정 주파수를 여과한 음악으로 이명 치료

그렇다고 3D 프린터와 웨어러블(wearable, 착용형 기술)만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암·혈액 진단기기로 변환할 수 있는 장치도 선보였다. 그러나 올해의 대회 우승은 티니트랙스(Tinnitracks)에 돌아갔다. 독일 회사 소노르메드가 만든 티니트랙스는 청각요법을 이용해 이명(귀울림)을 치료하는 웹 응용프로그램이다. 특정 주파수를 여과한 음악을 듣도록 함으로써 이명을 완화시킨다.

소노르메드의 요에르그 란트 대표는 행사장 무대에서 제품을 설명한 뒤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미국인 약 5000만 명이 이명에 시달린다. 이명은 주로 시끄러운 소리에 노출되면서 발생한다. 콘서트를 자주 찾는 사람이 걸리기 쉬우며 헤드폰 사용이 많은 사람이 중년에 가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명과 함께 찾아오기 쉬운 증상이 불안증이다. 불안증을 완화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이번 대회에서 결선에 오른 라이트스프라이트다. 불안, 스트레스, 우울증 같은 만성질병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다. 라이트스프라이트는 이번 대회에 첫 제품인 ‘시나스프라이트(Sinasprite)’ 게임을 출품했다. 불안에 시달리는 등장인물이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여러 가지 도전을 통해 명상의 대가가 되도록 하면 게임에서 이긴다.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힘써야

라이트스프라이트는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게임 ‘시나스프라이트’를 선보였다.

이 게임은 미군을 위한 시범 사업의 하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가진 군인과 가족을 위한 진료소에서 사용될 계획이다. 라이트스프라이트의 스와티 서브 대표는 치료사와 의사가 이용하는 인지행동 전략을 바탕으로 게임이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이 치료용 게임은 전통요법과 함께 사용하면 효과가 더 좋으며, 특히 치료사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환자에게 유용하다. 서브 대표는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 단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불안증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사생활 보호에 신경 쓰는 사람은 민감한 건강 정보를 기술회사에 넘겨주는 것이 무엇보다 더 불안할지 모른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에 소홀한 회사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페이스북이 특정 질병 환자를 위한 온라인 ‘자활공동체(support communities)’를 만들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인권단체들은 곧바로 우려를 표명했다.

SXSW의 의학기술 엑스포에 참가한 의료관리 회사 헬시스트 유의 서지오 라도브치크 최고마케팅 책임자는 특히 건강관련 기술업체의 경우 의료정보보호법(HIPAA)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개인과 질병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거나 저장하지 않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예를 들어 외국에 여행 가서 강도를 당하지 않으려면 고가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해킹을 예방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보유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디지털 건강업체의 데이터가 유출돼 민감한 정보가 악의를 가진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경우가 최대 악몽이다. SXSW의 밸런타인 프로듀서는 요즘 갑자기 보안업체들이 의료 부문의 데이터 보안에 바짝 신경 쓴다고 말했다. 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신망 높은 대기업이 건강관련 제품을 계속 쏟아내면 자연히 누그러지리라고 그는 덧붙였다. “의사의 경우와 같다. 사람들은 의사를 믿는다. 믿을 수 있다고 느끼면 의사가 어떻게 하든 그냥 믿고 맡긴다.”

글=크리스토퍼 자라 아이비타임즈 기자,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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