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의과학읽기] 욕망에 오염된 과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에르베르 토마의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최고의 과학사기사건, 필트다운'(이옥주 옮김, 에코리브르)은 과학 연구가 잘못된 성과주의나 국가간 경쟁에 휘말릴 때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필트다운인은 희대의 조작사건으로, 그 배경은 프랑스와 영국의 해묵은 라이벌 관계였다. 프랑스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을 비롯한 많은 화석인류 유적지를 자랑했지만, 영국은 변변한 유골 하나 없어 국가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1912년 고고학자인 찰스 도슨과 스미스 우드워드가 서섹스주 필트다운 부근에서 고인류의 두개골과 턱뼈, 부싯돌 조각, 화석 동물들의 유골을 발견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다. 최초의 인류로 손색이 없는 뇌 용량과 원숭이에 가까운 턱뼈, 적당한 변색과 마모 등은 애타게 발굴성과를 기다리던 영국 학자들과 대중에게 꿀 같은 소식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두개골에 '에오안트로푸스(여명의 인간)', 우드워드는 '최초의 영국인'이라는 쇼비니즘적 명칭을 붙였다. 영국인은 약 40년 동안 행복했다. 그동안 조작 가능성이 끝없이 제기됐지만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1953년 계속 의심을 품었던 케네스 오클리가 탄소연대 추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머리뼈는 현대 인간의 것이고, 턱뼈는 오랑우탄과 같은 유인원의 것이며, 연대는 불과 수세기 전이고, 어금니 부분을 사람의 그것과 흡사하도록 줄로 민 것이 밝혀졌다. 함께 발견됐던 화석동물들은 진짜였지만, 다른 곳에서 발견된 것을 옮겨놓았고 영국에서 출토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유골은 탈색효과를 노리고 정교한 화학처리를 받았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판다의 엄지'라는 책에서 이 사건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올바른 설명이 있어왔지만 기대와 열망, 그리고 편견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흥미롭게도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어쩌면 무모한 갈망으로 폭주했던 그 시대의 모든 이들이 공범이지 않았을까?

김동광 (과학 저술.번역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