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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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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NBC방송은 1992년 11월 17일 뉴스 프로그램 '데이트라인'을 통해 충격적인 화면을 내보냈다. 10대 소년이 제너럴모터스(GM) 픽업트럭을 몰고 가다 충돌사고로 화염 속에서 숨졌다는 증언과 함께 자체 실험 결과를 보도했다. TV는 트럭 외부에 장착된 연료탱크 때문에 충돌사고시 폭발이 쉽게 일어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소비자의 항의가 빗발치자 GM은 자체 조사에 나섰다. GM은 2개월간의 추적 끝에 방송사가 실험을 연출.조작한 사실을 밝혀냈다. 제작진이 극적인 폭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연료탱크에 점화장치를 부착, 충돌 직전 리모컨으로 작동시켰던 것이다. 결국 NBC는 조작 경위 등을 시인하고 사과방송을 했다. GM 측에 20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사장도 물러났다. NBC 뉴스의 신뢰도는 2위에서 4위로 추락했다.

남아공 출신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94년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수단의 굶주린 소녀'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아프리카 수단의 길가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 소녀를 독수리가 덮치려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었다. 그러나 특종에 눈이 어두워 독수리의 위험으로부터 소녀를 먼저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시달리다 수상 2개월 뒤 33살의 나이에 자살했다.

NYT는 2003년 5월 11일 1면에 "152년 NYT 역사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자사 기자의 날조.표절 사실을 실토했다. 제이슨 블레어 기자가 7개월 동안 쓴 39건의 기사가 '취재원의 내용 부인''잘못된 사실 관계''표절' 등으로 구성된 엉터리였다고 고백했다.

언론의 보도윤리를 강조할 때 원론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NBC의 연출보도에는 공익이란 거창한 명분이 보도의 진실성을 덮어버렸다. NYT의 허위보도에선 허술한 '게이트 키핑'이 화를 불렀다. '카터 자살 사건'은 직업정신과 윤리라는 명제를 던졌다.

MBC 'PD수첩'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취재원에게 '구속' 운운하며 협박하고 회유하는 등 언론윤리를 저버렸다. PD수첩의 뜻대로 황우석 박사의 논문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판명나더라도 불법 취재 문제는 묻히지 않는다. 부적절한 취재방법은 보도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영향을 미친다. 희대의 특종, 국익, 사회정의, 진실, 다 좋은 얘기들이다. 그렇다고 절차와 과정을 무시해도 될까.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