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국회] PD들의 취재보도 극적효과만 노리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재래시장은 물론 인터넷이나 TV홈쇼핑에서 유명상표를 모방한 유사상품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유명 브랜드를 흉내낸 것은 애교(?)라도 있지만, 진품 못진 않게 만든 것에다 진짜와 똑같이 생긴 상표를 붙인 가짜상품도 많다. 이른바 '짝퉁'들이다.

'짝퉁'이라는 말은 1990년대 후반부터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은어이다. 2001년 국립국어연구원의 신어목록에 오를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목록에서 '짝퉁'은 '모조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젊은이들의 유행어'라고 설명해놓고 있다.

'짝퉁'은 지난해 1월 발간된 금성출판사의 '훈민정음 국어사전'에 '꽃미남', '얼짱' 등과 함께 당당하게 단어로 등재되었다. 이 사전은 '짝퉁'을 '진짜와 거의 똑같이 만든 가짜 상품'으로 풀이해 놓았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가짜명품'이라는 의미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 용어의 뿌리를 '가짜'의 속어인 '짜가'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이들의 언어 축약습관이 작용하여 '짝'으로 변형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퉁'의 어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 중에서도 우선 질이 낮은 놋쇠로 만든 부처나 주발을 퉁부처, 퉁주발로 부르듯이 품질이 낮다는 의미의 '퉁'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무허가 업자가 짝퉁을 만드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싼값에 진짜와 거의 똑같은 물건을 손에 쥘 수 있으니 인기가 높다. '가짜 '는 원래 소비자를 속이려고 만든 제품이지만, 짝퉁은 아예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하는 소비자를 겨냥해서 만든 것이다. 소비자들이 처음부터 알고 산다는 점에서 가짜와 구별된다.

대부분의 경우 오리지널제품이나 짝퉁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어떤 것은 진짜보다 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는 전문가도 헷갈리게 마련이다. 짝퉁은 기술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값싼 원단을 쓰기 때문에 질이 떨어질 뿐이다. 그러나 좋은 원단을 쓰면 진짜 같아 보이므로, '진품'으로 속여 팔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짝퉁은 짝퉁이다. 아무리 원단이 좋고, 바느질을 잘했고, 모양이 멋지더라도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진품이나 명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제조허가를 낸 업체가 정식으로 상표등록까지 한 뒤 만든 것이라야 진품이 되고 명품이 되는 것이다.

이번 'PD수첩 사건'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무허가 업자'가 아주 정교한 솜씨로 '짝퉁'을 만드는 행위를 연상하게 된다. 솜씨는 있지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훌륭한(?) 제품을 만든 뒤 일류 메이커의 상표를 붙여 시장에 버젓이 내놓는 행태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차라리 누가 봐도 '가짜' 같다면 퇴출시키려는 마음이 생기겠지만 워낙 진품과 비슷하게, 어떤 경우는 더 좋게 만들어 냄으로써 '비난'은커녕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 짝퉁이다. 방송기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몰라도 필자는 오래 전부터 'PD수첩'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바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여겨왔다.

어떤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면 보통은 기자들이 심층취재하여 보도한다. 그러나 20여년 전부터는 PD들도 이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추적60분'이 그 효시가 아닌가싶다. 어떤 프로그램은 너무 훌륭해 시청자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한다. 기자들이 그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토록 적나라하게 파헤쳤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많다.

PD들이 취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로 동원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프로그램을 잘 만들었다는 이유로 언론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PD저널리즘'의 성공적인 케이스에 해당된다. ( 'PD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별로 오래되지 않는다.)

그러나 PD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면 기자들의 작품과는 어딘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우선 취재방법이다. 그렇게 용감할 수가 없다. 기자들은 취재원의 입장을 어느 정도까지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PD들은 대단히 저돌적이다.

취재방법이나 질문방식도 우회적이기보다는 직선적이다. 그러다 보니 취재를 당하는 사람들의 자세나 표정은 대부분 위축되어 있다. 화면에 잘 나타나지는 않지만 혹시 윽박질러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취재방식은 부정부패나 비리를 파헤칠 때는 매우 효과적이다. 취재하는 사람이 취재 당하는 사람을 압도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방식이 바람직한 것일까. 아니다. 무엇보다도 삼가야 할 일이다. 취재원이 결코 죄인이나 피의자가 아니가 때문이다.

요즘에는 검찰이나 경찰에서도 범인으로 의심되는 피의자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물며 PD가 취재과정에서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시사고발프로그램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취재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결코 칭찬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어쨌거나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은 근본적으로 '공인 받은 전문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솜씨 좋은 무자격자'가 만든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기자들이 만든 정품'이 아니라 '기자 아닌 사람들이 만든 유사제품'이다. 짝퉁은 그것의 성능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정품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가짜'이고, 점잖게 말하면 '유사제품'인 것이다.

PD수첩팀은 지금 자신들이 방영한 내용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황우석 박사 팀의 연구성과까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진실보도'라는 용어를 무슨 보도(寶刀)처럼 써먹고 있다. 그러나 기자출신인 열린우리당 김재홍 의원도 PD수첩이 '진실보도'를 명분으로 내세우는데 대해 '그 진실이라는 게 바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얘기하는 게 아니겠느냐. 그런 (글로벌스탠다드) 진실이 어떻게 지금 여기서 정의될 수 있겠느냐. 전혀 맞지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의원은 '뉴욕타임즈, 파이낸셜 타임즈, 주간 타임지, 또 권위 있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등 글로벌 스탠다드의 원천에 해당하는 세계적 권위언론이 모두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를 그대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며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만 왜 유독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지면서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를 훼손하고, 무슨 의혹이 있고 문제가 깃들여 있는 것처럼 하는 건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말이 있다. 약사가 진료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의사가 진료한 뒤 처방을 하면, 약사는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하거나 판매해야 한다는 뜻이다. 처방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엄청난 진통을 겪은 끝에 몇 해전부터 약사가 의사역할(?)까지 하는 관행을 없애고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PD들이 시사고발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이외 비슷한 맥락에서 판단할 수 있다. 언론에서의 취재활동은 의료에서 진료행위와 같다. 비약적인 논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PD들이 취재·보도하는 것은 마치 약사가 진료하고 처방하는 것도 모자라 수술까지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 그런 역할은 같은 방송사 기자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취재자격을 가진 사람은 'PD'가 아니라 '기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기자에게 '취재권'을 준 사람은 바로 독자들이다. 기자가 소속한 신문사나 방송사가 아니다. 이런 것을 두고 '관습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PD는 사정이 다르다. 그냥 방송사에서 임의로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PD들은 더 이상 취재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PD수첩' 같은 시사고발프로그램도 물론 만들지 말아야 한다. '짝퉁'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는 이번 사태와 비슷한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다. PD들은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말이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길 바란다.[디지털국회 이재일]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