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원어치 빈병 훔친 할아버지 즉결심판 회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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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때문에 빈 술병 30여 개(4000원 상당)를 훔친 80대 할아버지가 즉결 심판을 받게 됐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15일 빈 병을 훔친 혐의(절도)로 붙잡힌 A(83)할아버지를 즉결심판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A할아버지는 지난 14일 오전 9시20분쯤 인천시 중구의 한 주점 앞에 쌓아둔 맥주병과 소주병 30여 개(4350원 상당)를 몰래 가져간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A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76·신체장애 5급)와 함께 살며 빈병과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갔다. 주점 앞에 있던 빈 병을 가져간 것도 생계와 할머니의 병원비를 보태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하루 한 번은 침(하루 2100원)을 맞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 그동안 두 번 정도 빈병을 가져갔다"고 진술했다.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오래전 연락이 끊긴 아들, 딸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할아버지는 당시 현장을 지키고 있던 주점 주인에게 붙잡혀 경찰로 넘겨졌다. 주점 주인은 "폐쇄회로TV(CCTV)로 확인한 결과 여러차례 빈 병을 가져가는 모습이 찍혔다.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고 경찰에 요구했다.

경찰은 "사정이 딱하지만 증거가 명백해 입건하지 않는 대신 즉심에 넘겼다"고 말했다. 즉심은 2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나 30일 이내 구류형 등이 예상되는 범죄에 대해 경찰서장이 법원에 청구해 이뤄지게 된다.

경찰은 또 인근 주민센터에 A할아버지의 사정을 전달하고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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