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혁 "마음 비우니 술술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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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 기분입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가다니 스스로 믿어지지 않더라고요."

자고 나니 스타가 돼 있었다던가. 주세혁(23.상무)이 바로 그랬다. 대회가 끝난 지 하루 뒤인 26일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주세혁의 목소리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했다.

지난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끝난 제47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식에서 한국 탁구 사상 최고 성적인 준우승의 금자탑을 이룬 주세혁의 세계랭킹은 하루 만에 61위에서 2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사상 첫 우승에 도전했다가 결승전에서 베르너 슐라거(오스트리아)에게 2-4로 아깝게 졌는데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사실 16강에 오르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큰 욕심은 없었어요. 8강전부터는 마음을 비우고 경기를 하다보니 오히려 더 잘 풀리더라고요. 그렇지만 슐라거는 2001년 일본 오픈에서 4-1로 이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는데, 이게 문제였어요. 저도 모르게 서둘렀던 것 같아요. 코칭스태프가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하라'고 주문했지만 결정적 고비에서 범실이 잦았어요."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대표팀 5명 가운데 만년 5진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그가 갑자기 좋은 성적을 낸 비결이 뭘까.

"글쎄, 운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어요. 상무 입대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말부터 2월까지 기초 군사훈련을 받느라 따로 연습도 못했거든요. 대표선발전이 무산돼 운좋게 대표팀에 끼일 수 있었지, 만약 선발전을 치렀더라면 태극마크도 못 달았을 거예요."

그러나 그를 지도했던 KT&G 서상길 감독은 "세혁이가 이번에야 비로소 제 실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수비 전형 선수는 공격과 수비의 비중이 3대7이다. 끈질긴 수비로 상대 공격 실수를 유도해 득점의 대부분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주세혁은 수비뿐 아니라 공격력도 뛰어나 득점의 절반 가까이를 공격으로 따낸다. 그런 공격형 수비수 스타일이 이번에 제대로 먹혀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것이다.

지난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대부분 벤치를 지켰는데 서운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김)택수 형이나 3년 후배인 (유)승민이가 워낙 잘하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묵묵히 하다 보면 언제든 좋은 날이 오겠지, 뭐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한다.

목표가 뭐냐고 물었다.

"다음달 국내 종별 선수권에서 어떤 성적을 낼지 부담스러워요. 망신이나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 참,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면 단체전에서 한국팀이 우승하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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