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6)-제80화 한일회담(175) 김동조|불가능한 집단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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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가 모든 재일교포의 집단귀국을 추진하라는 이대통령의 지시에 이의를 감히 제기했던 이유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당시 재일교포 60만명의 성분을 분석하면 그것을 도저히 실현할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60만명중 민단계는 약25만명, 조총련계가 15만여명이고 나머지20여만명은 중립계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었다.
특히 60여만명중 97%가 남한출신이었음에도 조총련계가 15만명이나 됐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일본인과 혼인하여 일본에 확고한 생활근거를 가진 교포도 적지않았다.
이런 형편에 모든 교포가 귀국해야한다고 공포했을때 과연 얼마나 귀국할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고 귀국호응자의수가 대한민국에 대한 신임투표로 받아들여질 공산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또 이를 악선전할게 틀림없는데 그때 국제여론이 어떨 것인지는 불문가지가 아닌가.
둘째 이대통령은 귀국에 불응하는자는 우리 국민이 아닌것으로 간주한다고 한점이다. 자국민이 비록 외국에서 본국정책에 따르지 않는다고 본국정부가 그들에 대한 보호를 포기하고 외국정부에 그 책임을 떠맡길수도 없을뿐아니라 일생을 광복과 민족해방을 위해 헌신한 이대통령의 애국자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된다는점이다.
세째 일본정부가 귀국자의 전재산 반출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또 보상금도 다른 형식으로 얼마간줄 가능성은 있지만 그액수는 도저히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소액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점이었다. 「일본측은 59년 하반기동안 내내 계속된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 분과위에서 나의 예상대로 전재산 반출불가입장을 고집했고 「보상금」이 아닌 「정착지원금」형식으로 우리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액수정도를 줄수 있다는 시사를 한데 그쳤던것이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단1명의 동포도 북한으로 가게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나의 의견을 이해는 했지만 나에게 더 이상 일을 맡겨서는 안되겠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나는 9월4일 사직서를 경무대비서진에 맡긴 후에도 1주일간 「주노」국적부위원장의 이대통령예방에 배석하는등 차관직을 계속 수행했다.
동경에서 돌아온 「다울링」미대사와도 5일 만나 차관사의표명은 일체 내색치 않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한일관계를 의논했다.
미국무성유럽담당차관보로 내정되어있던 「다울링」대사는 『동경의 한국대표단이 오직 강경한 태도만 보일뿐합리적인 제안을 않고있는데 크게 실망했으며 나로서도 한일간의 이견조정노력을 포기했다』고 실토했다.
이대통령과 조정환외무장관은 그사이 내 후임자를 물색했던것 같다. 9월12일 조장관등 유엔총회참석대표단이 경무대로 이대통령을 예방해 출국인사를 드리는 자리에 나도 배석했다.
조장관일행과 내가 인사를 마치고 접견실을 나오려는데 이대통령은 『조장관과 김차관은 좀 남게』하며 다른 사랍들이 물러나자 조장관에게 『그대가 추천한 일본의 최규하공사를 오늘 불러서 그대 부재중 외무부일을 보도록 하게』라고 지시했다.
나는 그때 비로소 1주일만에 사직권고가 실현되는구나 하고 조장관과 같이 물러나오려 하자 이대통령이 『김차관』하고 부르며 다시한번 『세상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을때는 좀 쉬는것이 좋아』하고 위안을 해 해직당하면서도 감격치 않을수없었다.
사실상 파면이나 다름없어 외신도 『이대통령은 한일관계와 관련해 정부정책을 거역한 이유로 김차관을 내쫓았다』고 보도했다.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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