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여·성·속·옷 그 은밀한 진실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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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진=비비안 제공]

"지금까지 계속 A컵 브래지어를 착용해 왔는데 얼마 전 맞춤 속옷을 맞추러 갔다가 D컵이라기에 깜짝 놀랐어요. 설마 내가 내 사이즈를 그 정도로 모를까 싶어 반신반의했는데 의외로 입어보니 몸에 딱 맞아 편한 거예요. 옷맵시도 훨씬 나고. 아마 저처럼 자기 속옷 사이즈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여자들이 꽤 많을걸요." (서울 광진구에 사는 주부 임모씨.37)

매일 입는 속옷인데 한 치수도 아니고 이렇게 많이 차이가 나다니-. 혹시 임씨가 특별하게 둔한 사람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한국 여자들, 이렇게 열에 아홉은 자기 치수를 제대로 모른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한국 아줌마들이지만 유독 브래지어 등 속옷 살 때만큼은 관대해진다. 눈대중으로 적당히 사서, 대충 몸에 맞춰 입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속옷이야말로 가장 까다롭게 골라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몸에 맞는 속옷은 몸매 교정 효과뿐 아니라 그 즉시 날씬해보이는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미국에서는 '브라 피트니스'라며 속옷의 다이어트 기능을 강조할까. 그렇다면 이제라도 속옷에 엄격해지기만 하면 될까. 그런데 정작 주부들은 '제대로 치수를 알아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 치수를 안다 한들 살 수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몰라서 못 입고, 없어서 못 입는 여자들 속옷 이야기.

# 사이즈가 없다 = "따로 쇼핑할 시간이 없어서 속옷은 장 보러 간 김에 할인점에서 사요. 매대 위에 있는 것 중에서 대충 사이즈가 맞는 걸 고르죠. " (경기도 산본동의 주부 변모씨.33)

변씨처럼 할인점에서 속옷을 사는 주부가 많다. 그렇다 보니 속옷 매출에 있어 할인점 비중은 점점 느는 추세. 그런데 국내 속옷 판매량의 30%나 차지하는 할인점에 정작 사이즈는 몇 가지 없다. 속옷 업체들은 대부분 한국 여성 표준체형의 90%를 커버하는, 아니 커버한다고 주장하는 10여 개의 사이즈만 내놓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백화점 납품용 브랜드에는 30여 가지 치수가 있다. 하지만 할인점에는 "75A와 80A.90A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 물량을 공급한다"(유명 속옷업체 관계자)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A컵이 아닌 사람은 거의 물건을 찾을 수 없다. 표준체형에서 벗어난 10%의 여성은 말할 것도 없다. 주부 이모(38.서울 개포동)씨는 "난 B컵인데 할인점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며 "사이즈를 문의하면 판매원들이 보통 '한 사이즈 큰 A컵을 사라'고 한다"고 말했다. 꼭 맞게 입고 싶어도 고급 브랜드 백화점 속옷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르다 = 소위 표준체형의 범주에 들어가는 여성도 속옷 사는 데 불만이 많다.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부 박모(31.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씨는 "가격 대비 디자인이 다양한 데다 비교적 사이즈 교환도 쉽기 때문에 홈쇼핑에서 속옷을 자주 구입하는 편인데, 브랜드마다 속옷 사이즈가 달라 곤란을 겪은 적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같은 80A라 하더라도 브랜드마다 모두 달라 새로운 브랜드 속옷을 살 때면 늘 시행착오를 거친다는 것. 또 홈쇼핑은 브래지어 사이즈를 기준으로 주문하기 때문에 세트로 판매하는 팬티는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몸에 맞는 홈쇼핑 브랜드 하나만 계속 이용한다"는 김모(40.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씨처럼 본의 아니게 한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브래지어 사이즈에서 앞의 숫자는 밑가슴 둘레, 알파벳은 컵 크기다. 이렇게 똑 떨어진 숫자인데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른 이유는 뭘까. 비비안 디자인실 우연실 실장은 "국내 브랜드는 사이즈 체계가 크게 두 가지로 다른 데다, 체계가 같더라도 사용하는 패턴이나 디자인에 따라 컵의 크기가 다르다"며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사이즈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사이즈를 모른다 = 없어서 제대로 못 입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버젓이 내 사이즈가 널려 있는데도 단지 사이즈를 몰라 못 입는 경우도 즐비하다. 백화점이나 전문매장이 아니면 입어보고 살 수가 없어 정확하게 측정할 기회가 없는 데다 스스로 사이즈 재는 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부 권모(60.서울 청담동)씨는 "속옷에 대해선 소비자들이 지나치게 너그럽다. 만약 겉옷이라면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교환이나 환불을 하지만 속옷은 적당히 넘어가니까 지금 같은 불편함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시 소비자 입장에선 "기껏해야 A나 B컵….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가끔 속옷 만드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듯한 불쾌한 기분까지 든다"는 박모(55.서울 행당동)씨의 얘기에 공감이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안혜리 기자

*** 치수 자가진단 이렇게

.옆에서 봤을 때 브래지어 밴드가 앞뒤로 수평을 이뤄야 한다. 수평이 안 맞으면 일단 치수가 맞지 않는 것이다.

.브래지어 밴드 위로 등쪽 살이 비집고 나오면 사이즈가 작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은 큰 경우가 대부분. 밑가슴 치수를 줄여 밴드 높이를 낮춰주면 군살이 들어간다.

.딱 맞던 브래지어 끈이 자꾸 흘러내리면 브래지어 밴드가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등 위로 올라가 있다는 얘기. 다시 말해 사이즈가 크다는 것이므로 사이즈를 한 치수 줄여준다.

.컵 사이즈는 밑가슴 둘레와는 무관하다. 특히 나이가 들면 밑가슴 둘레는 줄어드는데 컵 사이즈만 커지는 경우도 많다.

.평균적으로 여성들은 일생 동안 브래지어 사이즈가 여섯 번 변한다. 옷 사이즈가 바뀔 때는 당연히 브래지어 사이즈도 바뀐다.

.큰 게 편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브래지어 밴드가 딱 맞아야 가장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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