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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아닌 15분 암 진료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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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남 거창군에 사는 폐암 환자 김모(65·여)씨는 2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차로 4시간을 달려 왔는데 1분 남짓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모니터를 통해 검사 결과를 보며 “경과가 나쁘지 않네요”라고 한마디하더니 간호사에게 다음 진료 예약을 지시했다.

 누구나 대학병원에 가면 ‘30분 대기, 3분 진료’를 경험한다. 지금껏 바뀌지 않았던 불편한 한국 의료 현장이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를 찾은 서울 강남구 최모(58·여)씨는 이와 다른 경험을 했다.

 최씨는 건강검진에서 폐 사진이 하얗게 나와 결핵이 걱정돼 임 교수를 찾았다. 최씨는 몇 가지에 놀랐다. 우선 15분이 넘는 진료 시간에 놀랐다. 임 교수가 검사 자료를 유심히 살피더니 환자와 가족의 병력(病歷), 그간 받은 치료 등을 세세히 물었다. 그런 다음에 ‘유사결핵 의심’ 진단을 했다. 최씨는 “임 교수가 상세히 진찰하니까 치료에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이 지난달 1일 ‘토요일 15분 진료’ 실험을 시작한 데 이어 이번에는 암 환자에게 확대했다. 14일 ‘암 맞춤치료센터’를 열고 위·대장·간·유방·폐·혈액 암 환자를 상대로 15분 진료를 시작했다. 최씨는 그 혜택을 본 셈이다. 15분 진료는 화·금요일 오전에만 하며 혈액종양내과 김태유(소화기·간)·임석아(유방)·김동완(폐)·고영일(혈액) 교수가 담당한다.

 서울대병원은 대개 3~5분 외래 진료를 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30초만 한다. 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동완 교수는 “지금은 새로 온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15분 진료를 통해 질병의 상황뿐만 아니라 환자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파악해 여기에 적합한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환자의 주거지·동거인·직업·병력·가족력을 확인하고 환자가 치료법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알려면 15분도 짧다”며 “환자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정확한 진단·처방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대상 암과 시간대를 늘릴 계획이다.

 서울대병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병원 의료 현실은 ‘3분 진료’에 머물러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내과 이찬희 교수팀이 지난해 9월 환자 1105명을 설문조사했더니 평균 외래진료 시간은 4.2분으로 나왔다. 가장 긴 감염내과가 7분이고 피부과는 3.1분으로 가장 짧다. 환자들은 만족할 수 있는 진료 시간으로 6.3분을 제시했다. 한국에서 3분 진료가 이뤄지는 이유는 진료 시간이 길건 짧건 진찰료가 같기 때문이다. 미국 메디케어(노인 의료보험)는 진료 시간에 따라 10분(44달러)~45분 이상(208달러, 초진 기준) 다섯 단계로 나뉘어 있다. 한국은 정신과 진료만 15분 단위로 세 단계로 차등화돼 있다.

 복지부도 진찰 시간에 따라 진료비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손영래 보험급여과장은 “원하는 병원에 한해 차등 진료비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하도록 상반기 내에 의료계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조심스럽다. 병원협회 정영호 정책위원장은 “15분 진료는 필요한 환자만 제한적으로 시행하되 진료 수가가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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