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점수 ≠ 영어 구사 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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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세계에서 한국인 응시자가 가장 많은 영어 평가시험인 토익(TOEIC)이 평가시험으로서나 영어실력을 기르는 학습 수단으로서 한계가 많다는 정부 측 보고서가 나왔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의뢰해 조사한 '국내 영어능력 평가시장 문제점 개선방안 연구' 결과다. 국회 문화관광위 심재철(한나라당) 의원은 4일 이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대.경북대.전남대.전북대 등 17개 국립대 대상으로 영어평가시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학입시와 학사운영에서 영어평가는 대부분 토익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주대는 학부생에게 '토익 장학금'이란 걸 줬다. 또 12개 대학이 수시모집에서 외국어 특기자 전형을 실시했는데 대부분의 수험생이 토익 성적을 냈다. 보고서는 "학생들이 특강 수강 등으로 단기간 내 성적 향상이 가능하며 선배 등을 통해 시험 정보 등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4개 대학이 부설 어학교육담당 부속기관을 중심으로 토익강좌를 열고 모의 토익시험도 연간 4~13회 실시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토익 성적은 들쑥날쑥했다. 한 대학 영어영문과의 장학금 신청자 18명의 토익 성적을 3개 학기(3학년 1학기~4학년 2학기)에 걸쳐 살펴본 결과 5명의 성적이 왔다갔다 했다. 6개월에서 1년 사이 200점 이상 성적이 오른 학생도 11명이나 됐다. 보고서는 "토익 성적이 기본적인 영어 구사능력과 무관하게 시험의 난이도 혹은 준비 정도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하며 "토익 응시생과의 개별면담에서도 점수가 향상됐지만 여전히 영어 구사력에 자신감이 없다고 느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또 "영어 관련 교수들은 고득점(800점 이상) 학생도 말하기와 쓰기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며 지속적으로 토익시험 준비를 영어공부의 수단으로 삼아 졸업 때까지 영어실력이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영어 공부를 토익 위주로 하다 보니 실력이 제대로 늘지 않는다는 것.

기업체도 토익을 외면하거나 그 비중을 낮추고 있다. 보고서는 "기업은행은 2003년도까지 800점을 입사 기준으로 내세웠지만 문제지 유출이나 대리시험 문제가 불거져 아예 지원 요강에서 뺐고, LG칼텍스에서는 토익 만점자 20명 전원이 2차면접에서 탈락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국내 영어평가 시장이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떨어지는 건 영어평가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토익의 한계와 문제점 때문"이라며 "토익시험 성적과 언어 구사능력과의 상관 관계, 토익이 언어학습이란 차원에서 적절한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심재철 의원도 "이런 상황 속에 지나친 토익 집중 현상은 국가적 낭비"라며 "일본이나 중국처럼 우리 형편에 맞는 국가공인 영어평가시험 도입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해 한국의 토익 응시자는 183만 명으로 일본의 143만 명을 앞지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60개국에서 연간 450만 명이 응시하는 토익은 일본이 비즈니스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창안됐다. 미국의 비영리기구가 개발해 1979년 처음 실시됐으며, 한국에서는 82년부터 시험이 치러졌다. 한국의 토익 관련 시장 규모는 학원 등을 포함해 연간 4000억원대로 추정된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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