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새 일보다 마무리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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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월 25일 청와대를 떠난 김우식(현 연세대 창의공학연구센터 명예교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다. 인터뷰에 응한 김 전 실장은 재직 시절의 뒷얘기와 청와대에 대한 조언,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밝혔다. 인터뷰는 그가 총장으로 재직했던 연세대 공학원 3층 사무실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비서실장 퇴임 후 3개월이 지났다.

"김대중(DJ)도서관은 내가 연세대 총장 때 세워 애착이 많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인 전직 대통령 도서관으로 통치 자료나 평가가 후대에 연결되니 대통령 리더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관심에서 퇴임 후 20여 일간 미국의 J F 케네디.카터.레이건 센터의 운영실태를 둘러봤다."

-전직 대통령과 관련한 새로운 사업을 기획 중이라는데.

"연세대 제2 도서관 내에 국가관리연구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역대 대통령별로 부스를 만들 것이다. 총장 시절 이를 위해 역대 대통령들을 두 차례 이상씩 만났다. 대통령별로 후원자를 모아 기금으로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다. 그 기금으로 해당 대통령을 연구하는 학자를 길러내고, 후대에 교훈이 될 대통령 평가를 남기자는 것이다. 또 창의공학 연구센터를 법인화했다."

-바깥에 나와서 본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은.

"리더에 따라 리더십은 많은 특성이 있다. 히틀러를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는 실패한 리더다. 독특한 사상을 갖고 이끌었지만 그것이 객관.타당성이 결여되고 소위 국민.세계인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민이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 변화 속엔 좀 솔직하면서도 탈권위적인 리더십을 바란 것이다. 거기에 노 대통령이 딱 맞았다. 그런데 이게 받아들이는 쪽하고 보는 쪽에서 달라서 문제였다. 이 간격을 어떻게 좁히느냐를 막 얘기하는 과정에서 대통령하고 얼굴을 붉힌다는 말이 나왔다. 리더는 물론 고집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방향을 정하면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더라도 방향대로 나가는 게 리더의 덕목이다. 이런 원칙 아래 소신을 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리더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신뢰를 받지 못하면 무슨 얘기를 해도 안 믿는데 그래서 리더는 어려운 것이다."

-노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이 연정을 반대할 것 같아 퇴임을 수용했다고 했다.

"난 언론과 간격을 좁히려고 했다. 진솔.정직하게 공생.협조하는 관계를 원했다. 물론 대통령 의중도 있는데, 난 막 얘기도 하고 해서 그 와중에서 차이가 생겼다. 언론관에서는 생각이 달랐고, 대통령도 나름대로 언론관이 있었다. 대통령께 진언한 얘기를 밝히면 안 되지만 연정에 대해 내가 반대했다 하더라도 청와대 내에선 그 카드에 대해 다른 얘기가 있을 수는 없다."

-불법 도청 때문에 DJ 측과 현 정부가 서먹해졌다.

"불법 도청은 사실대로 정리될 텐데 그건 검찰이 법대로 알아서 할 문제다. 그걸 갖고 김 전 대통령 측이나 동교동에서 청와대에 대해 섭섭한 생각을 갖는 것은 너무 예민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념 논란이 거세다. 진보.보수 이념 논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사회에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다. 서로 이해하는 성숙한 수준의 체계가 필요하다. 사실 아무리 진보 쪽 사람들도 북한 정권이 적화하려고 밀고 내려오면 박수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사회 구조상 변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진보라는 것이다. 보수.진보를 너무 북한 정권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우리의 성향은 배제돼야 한다. 사실 강정구 사건도 그냥 … 조용히 처리될 수도 있었는데, 나 나름대로 아쉬움도 있다."

-이공계 교수 출신으로 최근 황우석 교수 연구 논란이 어떻게 해결돼야 한다고 보나.

"황 교수의 성품으로 보나 30여 명의 연구진이 지켜보면서 나눠서 하고 있는데 거기서 거짓이나 사기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수십 명의 과학자가 쳐다본 연구인데 거짓말일 수는 없다. 황 교수가 실험실에서 결과를 보려면 몇 년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보배처럼 잘 보호하고 감싸야 한다. 지금은 너무 노출됐다. 재임 시 황 교수에게 몸도 좀 생각하고 외국에도 덜 나가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 사람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더라. 그런 게 가능하려면 전문성 있는 서포터가 필요하다."

-청와대의 국정운영에 바랄 점은.

"시간이 별로 없다. 이젠 새로 일을 벌이기보다 추스르고 마무리해야 한다. 집중과 선택으로 중요한 과제를 가다듬어 성과를 내야 국민에게 평가받을 것이다. 세계사적 흐름으로 볼 때 정말 중요한 기간이다. 남은 기간 모든 사람이 달려들어 성과를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퇴임 후 노 대통령에게 조언하는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뵐 기회가 있었다. 최근 대학의 분야별 특성화 개혁 방안을 지난달 말 연구팀과 함께 대통령께 보고하기도 했다."

-충남도지사로 출마한다거나, 과학기술부총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난 지금 일에 몰두하고 있다. 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만난 사람 = 최훈 정치부 차장, 정리 =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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