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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 '성완종 사건' 정면 돌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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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여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1년 전 세월호 침몰도 충격적인 위기였지만 그래도 그것은 국가 전체의 책임이었다. 반면 성완종 사건은 정권 핵심부와 관련된 것이다. 만약 사건이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이나 2012년 대선과 관련된 자금 의혹으로 번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파도는 핵심부를 넘어 대통령에게 닿을 수도 있다. 줄줄이 이어졌던 인사파동이나 정윤회 문건사태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은 사건을 정권의 운명이 걸린 중대위기로 인식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위기의 한가운데에 선택의 길이 있다. 핵심을 외면하고 미봉책이나 정치적 술수로 대처하면 더 큰 위기가 온다. 김영삼·김대중 정권은 아들들의 비리를 쉬쉬하다가 결국 아들의 사법처리와 도덕성의 추락이라는 대형 위기를 맞았다. 반면 결연한 각오로 상황에 대처하면 정권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과 이회창 후보를 둘러싼 대선자금 수사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 3인과 국무총리 그리고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얽혀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말 그대로 ‘친박 게이트(gate)’ 의혹이다. 박 대통령은 16일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한다.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이다.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권이 이번 사건을 잘못 다루면 민심은 크게 이반하고 박근혜 정권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

 국민의 의구심은 여러 갈래다. 관련자들이 권력에 깊숙이 연관된 인물들인 만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수사가 대선후보 경선이나 대선의 자금 의혹에 이르면 대통령이 그런 상황을 용납할 것인지 많은 국민이 의심한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선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성 전 회장의 진술만 있을 뿐’이라며 머뭇거려선 안 된다. 대통령은 어제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를 읽기에 이 정도는 부족하다.

 성완종 리스트는 부분적으로 진실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 전 회장이 1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홍준표 경남지사의 측근이 사실상 이를 시인하고 나선 것이다. 성완종 녹취록이 전부 공개되거나 다른 증인이 나타나면 성완종의 ‘유언’은 더욱 진실에 다가갈 것이다. 경향신문사는 녹취록을 검찰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사건을 끌고 나가는 것은 사실(fact)이다.

 박 대통령도 사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만약에 수사가 대선자금으로 번져도 대통령이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커다란 줄기에서 부정(不正)이 없다면 모든 걸 정면으로 돌파하는 모습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지켜줄 것이다. 정권의 허물이 무엇이든 솔직한 자세만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 미국의 닉슨이 고꾸라진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은폐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시험에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