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그래도 개혁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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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우리의 국가 부채는 1211조2000억원에 달했다. 전년보다 93조3000억원이나 늘어났다. 그중 절반이 넘는 47조3000억원이 공무원과 군인연금 적자를 보전하는 데 쓰였다. 지금 공무원연금을 개혁하지 못하면 매일 80억원의 국민 혈세가 그 구멍을 메우는 데 흘러간다.

 한국노총의 이탈과 김대환 노사정위 위원장의 사퇴 표명으로 무산 위기에 처한 노동시장 개혁도 마찬가지다. 이 개혁이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20대 고용률이 10% 선에 불과한 스페인·이탈리아 수준으로 전락한다. 한국은행이 예측한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3.1%에 그치고, 물가상승률도 0.9%밖에 되지 않는다. 저성장과 디플레 수렁에 빠진 경제를 구할 길은 과감한 구조 개혁뿐이다. ‘성완종 사건’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 개혁 같은 국가적 과제만큼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부·여당은 성완종 파문을 성역 없이 파헤쳐 진실을 밝히고, 비리가 드러난 인사는 엄벌해야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이 국정의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정권 핵심 실세들이 기업인 출신 전직 의원에게 거액을 챙겼다는 의혹을 덮어 둔 채로는 제아무리 중요한 국정도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 정권의 도덕성을 뒤흔드는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국정을 핑계로 넘어가려 했던 과거 정권들의 구태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핵심 어젠다들은 사망선고를 받고, 새누리당은 4·29 재·보선과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의 철퇴를 맞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역할도 중요하다. 성완종 파문을 한 점 의혹 없이 파헤치고 관련자를 엄벌토록 여권을 압박하되 공무원연금이나 노동시장 개혁만큼은 이와 연계하지 말고 조속히 처리되게끔 여당과 힘을 모아야 한다. 성완종 파문을 구실로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인 구조개혁을 회피한다면 엊그제 국회에서 ‘새경제연합’이 되겠다고 다짐한 문재인 대표의 연설은 빈말이었음을 자인하게 될 뿐이다.